마음의 향기

> 입암뜰 > 마음의 향기


목록

오빠 믿지?

조회1,473 2012.07.11 09:18
소요거사


어느 해인들 여름이 덥지 않으랴만 올해의 여름은 초장부터 유난스럽다 못해 극성이다.
6월이 이제 겨우 중순 조금 지난 싯점에서 34-5도로 수은주를 끌어 올려 일부 지역에서는
한 여름에나 발생되는 '폭염주의보'까지 내렸으니 이 무슨 조화인가.
기상전문가들의 이렇쿵 저렇쿵 얘기는 들을 필요없다.
이 하늘 아래 이 땅의 현실이 어느때보다 어둡고 혼탁하게 덮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의 상념도 속절없이 깊어진다.
봄을 아쉬워 하는 사람도 많지만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
꽃향기 코끝을 간즈럽히는 희열을 느끼는 것이 봄이라면 한해 내내 가두었던 정열을 마음
껏 뿜어내는 것이 여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환희를 다 풀어 놓은듯 농익을 대로 농익은 여름의 멋에 흠뻑 취하려면
아루래도 맑은 햇살이 작열하고 솔가지 사이로 살랑이는 높새바람이 그 더움을 녹혀줄 무렵,
벌써 가을인가 싶을때 그때서야 비로소 여름의 맛은 그윽해 지고, 상념은 더욱 원숙해 지는
것이다.

「은퇴와 함께 떠나는'여보'ㅡ」
한 유명일간지 1면에 톱으로 뽑아 놓은 제목이다.
그 맡에 부제로 쓰여 있기를 '55세 이상 이혼 7년새 2배 증가' ㅡ
아무리 날씨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더라도 눈이 번쩍 뜨여지는 이 기사를 어찌 그냥
넘길쏘냐.
은퇴 연령인 55세 이상의 소위 '황혼이혼'의 증가가 지난해 1만4,200건으로 2000년의 두배
에 육박했고 1년전에 비해서도 10% 늘어났다고 통계수치가 명확히 나와 있다.
언젠가 아내가 부부싸움끝에 했던 말이 벼락치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당신 늙어서 봅시다"
추측컨대 오랜 결혼생활 중 사소한 갈등들이 누적된 것이 나이가 들어 폭발해서 남편의
경제적 능력이 쇠퇴되는 은퇴후에 보복성 이혼요구가 증가하는 모양이다.
수십년 쌓아올린 부부의 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자그마한 불만앞에 여지없이 허물어 지다니...

요즈음 중년부인들 사이에 '영식님. 이식군.삼식이'란 용어가 유행하고 있단다.
남편이 집에서 하루에 한끼도 않먹으면 깍듯이 '영식님'이요,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야
하면 '삼식이'라고 비하하는 이 우스개도 황혼이혼과 절대 무관하지 않을듯 하니 기가 찬다.
그런 그들도 이런 때가 있었으리니....
잠시 시계를 꺼꾸로 돌려보자.



소녀에게 오빠는 '어린 아빠'였다.
백과사전을 찾아 보니 오빠의 어원도 이르거나 미숙함을 의미하는 '올'에 아버지라는 '압'이
결합된 것이라 한다. 여기에 호격(呼格)조사가 붙어 <올+압+아>가 오라버니, 명사형 어미가
붙은 <올+압+이>가 오라비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19세기만 해도 '옵바'로 쓰였으나 20세기 들어서 '오빠'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일까.
오빠라는 이미지에는 그리움과 애절함, 그리고 남다른 듬직함이 뭉쳐있는 것은...
"뜸북 뜸북 뜸북새는 논에서 울고...'로 시작되는 동요 '오빠생각'은 이런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겠다던 서울간 오빠는 귀뚜라미가 우는 계절이 되어도 소식이 없으니
오빠에 대한 그리움은 하늘을 사무친다.

1936년 장안을 울리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것으로 원제 '홍도야 우지마라' 에서 느껴지 듯 오빠와 동생의 정을 절절히 그렸다.
이랬던 오빠는 남진 나훈아때 박수부대를 거쳐 조용필의 시대에 들어서는 연모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엄마야~나는 왜..." 하면 "꺄악~'하고 비명을 지르는 '오빠그룹' 이 탄생한 것이다.
소위 'S오빠'에서 '아는 오빠'...그리고 이제는 그냥 '오빠'로 진화되었다.
오빠 ~하면 친 오빠는 물론 대학선배도 되고, 직장선배도 되고, 애인도 된다.
심지어는 시부모 앞에서 어린 자식을 둔 부인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판이니 오빠라는 이
용어는 전후좌우를 잘 살펴 새겨 들어야 실수를 면하는 상황이 되었다.

"핸드폰 좀 줘 봐"
"왜?"
"사진 좀 찍으려고. 뭐 찔리는게 있어?"
"찔리기는.....주머니에 있으니 꺼내가"
그런데 잠시 후 사단이 나고 만다,
"니가 어쩌면 이럴수가 있어?"
"내가 뭘?"
"글쎄 어떻게 내가 9번이냐고?"
남자의 핸드폰에 여자 핸드폰 번호가 아홉번째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회사가 1번, 2번 이후에는 가족들, 친구들,그리고 그 다음에 여자친구의 전화가 저장되어
있었다. 남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변명한다.
"요즘 회사일이 좀 바쁘냐? 그래서 눌리기 쉽게 1번에 넣은 거고,...
그래도 네 번호는 한자리 수에 들어 갔잖냐"
".........................."
"자~이제 네가 1번이니까 화 풀어"

.

이 연인들 뿐 아니라 핸드폰의 단축번호 저장순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민감한 문제에 속했던
것 같다. 어젠가 아내도 "당신 핸드폰 구경 좀 합시다" 하길래 무심코 주었는데 잠시후 싱글
벙글하며 다시 건네 주었다.
내 핸드폰에는 1번이 집 번호고, 2번이 아내 것인데 호칭도 '왕비님'으로 해 놓았으니어찌
기분이 좋지 않았겠나.
그래선지 최근 '오빠 믿지?" 하는 위치기반의 스마트폰 앱이 화제다.
앱을 서로 등록하면 상대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지도위에 뜨니 '어디야?'하고 물어 볼 필요가
없는거다. 커플용 전자발찌다~ 사생활 침해다~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서도 서로의 애정확인
에는 그만이라고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핸드폰 단축번호에 자기 전화번호가 후순위라고 트집을 부리고 '오빠 믿지'라는 위치추적
까지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이 열정적 사랑이, 결혼하고 아이낳고 그럭저럭 세월이 흐르면
어느 사이 '너 늙으면 두고 보자'하는 꽁심까지 품었다가 황혼이혼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이 <남녀인연>의 불확실성인가 보다.
그래서 남들앞에서는 잘사는 척하지만 집안에서는 등 돌리고 사는 커플들을 '가면(假面)부부'
라고 부른다는 조어(造語)도 생겼다.
7년동안 한집에 살면서 메모지로만 얘기를 주고 받은 어느 노부부에게 법원은 이혼판결을
내렸다. 여든 남편은 일흔여섯 아내에게 메모지를 건네 일을 시키며 조리법까지 지시했다고

한다.
'두부는 비싸니 각종 찌개에는 3-4점씩만 양념으로 사용할 것' 이라는 식이다.
할머니는 지시대로 깻잎 반찬을 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남편에게 멱살을 잡힌끝에 이혼소송을
냈다.

.

「한잎 두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 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중략)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요.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민도현/가을엽서)

이 혼탁한 여름의 상념을 원숙케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왜 낮은 곳에 있는지 부터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제것을 버림으로서 가장 귀한것을 찾는다는 희생정신을 알때 우리는 남녀인연의
소중함도 지켜낼수 있을 것이다.
"쉰이 지나면 나머지 인생은 일종의 잔돈 같은거야..."
하루를 사는 동안 수없이 마주쳐야 하는 결정의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해야 하는
평균적 삶에서 유효한 것이 '주입된 긍정'이라면, 위기에서 유효한 것은 스스로
'찾아가는 긍정'이 아닐까.
아무리 어둡고 혼탁한 이 여름의 속절없는 상념이지만
'나만의 긍정방정식'은 찾아야 되겠기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