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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鄕

조회131 2019.11.08 19:18
김석연2

故鄕

나는 고향을 자주 찾는 편이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지근거리이기도 하지만 고향땅을 딛고 있기만 해도 몸에서 힘이 솟는 것 같아
한달에 두세번 정도는 가 보곤 한다
.

 

5년전, 고향땅에 묻혀있던 5대조부터 부모까지의 산소를 양양으로 이장을 한 일이 있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산소는 이제 관리할 자손들도 많지 않아 정리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형제들이 모여 중론을 거친 후 양양문중묘원으로 이장을 하게 된 것이다
.
일가 친척들도 다른지방으로 이사를 가거나 돌아가신분들이 많아 고향땅은 이제
연고가 없는 고향이 되고 말았다
. 어렸을때부터 같이 크고 우정을 함께 한 친구들도 고향을 뜨거나
먼 세상으로 가버린 고향은 내 입장에서 보면 삭막하기 그지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

 

그래도 사람은 가고 없어도 고향땅은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길, 그 논두렁,
그 언덕이 그대로이고 나무하던 먼산의 모습도 그대로이다.

자주 찾는 이유가 그곳에 있다.

 

10월 어느날 벼가 누렇게 익어 황금 들판이 되었을 때 고향엘 갔었다.

태백준령이 첩첩이 쌓인 저곳 저 험준한 산을 넘으면 영세라고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영서지방을 할머니는 영세라고 알려줬고 친척분들이 오면 그중에 어느 한분 한테는 영세할아버지가 오셨다고 했다.

눈이 내리길 기다리면 저 높은산에 눈이 세 번 와야 마을에도 눈이 온다고 가르쳐 주시던 할머니의
그 높은 산은
6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높은 산 아래 널따랗게 펼쳐진 벌판, 벌판 한 가운데로 흐르는 개울, 그 개울가에 붙박이처럼 자라고 있는 버드나무, 버드나무 밑에 살고 있는 미꾸라지와 기름종아리, 오후 햇볕을 즐기는 소금쟁이, 강안에 퇴적된 모래톱과 조약돌, 그 조약돌을 귀에 대고 물을 빼는 여름철 악동들.

고향은 길가에 핀 이름도 알수 없는 꽃송이 마저 정겹다.

하물며 곡식이 알차게 영글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저 황금들판을
눈으로 보지 않고야 서러워 잠이 오겠는가
?

 

고향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몇해전에 다큐멘터리극을 보고 난 후에 절실하게 다가왔다.

소양강댐은 1967년에 착공하여 197310월에 완공된 다목적 댐이다.

이 댐을 건설하기 위해 수몰예정지역의 마을은 다른곳으로 이전하였고 정든 학교는 폐교되고 말았다.

다큐멘터리극에 출연했던 촌로는 농부가 아닌 어부로 변신되었고 고향이 그리운 날이면
물속에 잠긴 고향땅 부근 물위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간다고 했다
.

추석날이나 설날등 명절이면 갈 수 없는 고향이 그리워 사무친다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떠 오른다
.

갈수 없는 고향은 분단된 북녘땅만 있는게 아니었다.

가슴에 묻어만 두고 자라는 아이들 볼세라 혼자만 흘려야 했던 눈물이 한두해일까?

 

고향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떠한가?

친구들이 다 떠나고 말할 상대가 없으면 어떠한가?

밤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 감 따먹던 뒷동산, 솔바람소리 요란했던 소나무 군락지,

삿갓봉 너머 나무하던 옛길, 영세 넘는 높은산과 흰구름....

고향의 어느 하나 정겹지 않은게 없다.

땅 한뼘, 풀 한포기마다 그곳엔 내 조상의 정열이 깃든 곳이다.

누대에 걸쳐 땅은 소유자의 명의만 바뀌었을뿐 땅이 품고 있는 옛 이야기는

아직도 풀어내고 있다.

그들과 마음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고향을 찾아간다면 한달에 두세번 가는 이유가 될까?

 

고향!

누군가 말만 띄워도 가슴이 설레지 아니한가

육신이 멀쩡할 때 수시로 가 볼 일이다.

 

 

 

어단파파 2019.11.11 08:55:42
누가 그럽디다.
"그리움이 없는 곳은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곱씹어 보면 결국 사람 관계이며
못 잊을 추억입니다.
가끔씩 그 사람이 그립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에이포 2019.11.13 09:15:25
유년의 천진함과 
청년의 꿈이 함께 자란 곳 고향.
그 고향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엮으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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