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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대보름 세시풍속(歲時風俗)

조회322 2019.02.11 09:48
김윤기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

少溪 정철교(여찬리 271번지 출신) - 강릉제일고 80년사 편찬위원장 역임


  우리나라의 각종 명절에는 명절 따라 즐기는 세시풍속도 다양한데 그중에 으뜸은 정월대보름이다. 정월은 일 년 중 으뜸 달로서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율력서律曆書는 기록하고 있다.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들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이 정월이다.
  세시풍속은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온 나라가 대체로 같은 풍속
으로 명절을 쇤다.
  대보름 전날은「귀신달래 날」이라 하여 온갖 잡귀를 내 쫓는 날이다. 밤이 이슥해지면 집집마다 울담 입구에 짚단으로 불을 놓고 대나무를 태워 폭죽을 터뜨리거나 아이들은 화약을 터뜨리고, 아낙네들이 모아둔 머리카락을 태우거나 헌 고무신을 태워 폭죽 터지는 소리와 고약한 냄새로 귀신을 쫓아낸다. 여기저기서 “뻥! 뻥!”터지는 폭죽소리에 귀신은 혼비백산하여 마을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댓돌위의 신발은 모두 방에 들여놓거나 엎어놓아 귀신이 발붙이지(신고 가지) 못하게도 하고, 집 외벽 기둥이나 문설주에 발이 촘촘한 떡가루 내리는 체와 바늘을 걸어두어 귀신이 바늘로 체 구멍을 세다가 혼란스럽게 만들어, 첫닭이 울 때까지 다 세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게 하여 첫닭 우는소리에 소스라쳐 도망가게도 한다. 귀신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편이다.
  문지방 밑을 빙 둘러 재(木灰)를 뿌려 노래기를 퇴치하는 방편으로「노내각시(노래기) 분주기」도 한다. 해충의 접근을 막는다는 믿음이다.
  일찍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밤늦게까지 음식을 장만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어쩌다 먼저 잠든 사람에겐 눈썹위에 떡가루나 밀가루를 뿌려 아침에 놀려준다. 명절 따라 고향집에 모인 가족들이 모처럼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픈 바램이다.
  부잣집 흙을 몰래 가져와 부뚜막에 발라 복을 기원하는「복토 훔치기」, 볏짚을 묶어 깃대처럼 만들어 그 속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어 목화와 함께 매달아 풍년을 기원하는「볏가릿대 세우기」, 대보름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물물을 길어와 풍년과 운수대통을 기원하는「용알 뜨기」풍습도 있다.
  대보름날 아침에 잠이 깨면 소리 내어 글을 읽고「귀밝이술」도 먹고, 여자들은 바느질을 하며, 호두․은행․잣․밤․땅콩 같은 견과를 깨물어「부럼」을 한다. 그래야 공부 잘하고 귀가 밝아지며, 바느질도 잘하게 되고 각종 종기나 부스럼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부럼 대신「이굳히 엿」을 먹는 지방도 있다. 볶은 콩을 넣어 만든 딱딱한 콩엿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부럼은 견과류를 깨물 때 “딱”소리가 나야 효험이 있다고 했다. 콩엿을 먹거나 부럼을 하는 것은 모두 단단한 치아건강과도 관련이 있음이다.
  아침 일찍 장정이 집을 방문하면 복이 들어온다고 하여, 서로 이웃집을 방문하는 품앗이도 하고 이때 대보름맞이 아침 인사도 나눈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상대방을 불러 대답하면 더위를 판다. 더위를 많이 팔아 그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는 생각이다.
  보름날 아침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오곡밥(찹쌀․찰수수․팥․차조․콩)과 약식으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 후, 일 년 동안 모아 둔 묵나물(묵은 나물)로 아침식탁을 준비한다. 대보름 특식은 역시 약식인데, 약식藥食은 약밥이라고도 하며 찹쌀을 물에 불려 시루에 꼬들꼬들하게 찐 후, 다시 쏟아 참기름과 버물려 밥알이 서로 붙지 않게 한 다음 곶감․밤․대추․잣․호두․은행․설탕․꿀․간장․계피가루 등을 넣어 다시 뜸을 들여 만드는데, 뜨거울 때 네모난 그릇에 담아 썰어내면 색깔 곱고 맛있는 약식이 된다.
  대보름날 낮 동안엔 각종 행사가 벌어진다. 액을 날려 보내는「액 연 띄우기」는 연에다 ‘송액’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 써서 그동안 날리던 연의 연줄을 모두 풀어 끊어서 날려 보낸다. 마을의 풍물패는 집집마다 돌면서 흥겹게 놀며 축원도 하는「지신밟기(마당밟이)」를 하며, 이때 마을에서 쓸 공동 경비를 모금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옹기종기 모여 널뛰기․제기차기․통차기․자치기․줄다리기․사자놀이․투호와 고싸움놀이도 하고, 윷놀이나 화투놀이․골패놀이․바둑․장기․쌍륙도 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아홉 가지 나물 반찬에 아홉 번 밥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해야 하고, 세집 이상의 성이 다른 집의 밥을 먹어야 그해에 운이 좋다고 하여, 머슴들은 땔감을 짐 져 나르고 아이들은 각설이 흉내를 내며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곤 했는데, 집집마다 안주인은 각설이에게 주려는 밥을 미리 준비해 두고 품바타령이 자기 집 쪽으로 오기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모처럼 명절을 맞아, 먹고 싶은 음식을 배불리 마음껏 먹고픈 생각도 세시풍속에 녹아있다.
  그런가 하면 기르는 개는 하루 종일 굶긴다. 그래야 일 년 동안 파리가 꾀지 않고 쇠약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다. 대보름날 잘 먹지 못하거나 오히려 굶은 사람을 가리켜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개는 오후쯤엔 대체로 먹이를 준다. 정이 많은 우리민족은 개를 하루 종일 굶길 만큼 매몰차지 못하다.
  오후가 되면「다리 밟기」부터 시작한다. 열두 다리를 밟으면 일 년 동안 액운이 달아나고 다리 병을 앓지 않는다 하여, 마을 근처의 모든 다리를 열심히 밟는다. 강릉의「사천하평답교놀이」는 정월대보름이 아닌 음력 2월 초엿새 좀생이 날(좀생이별을 보며 그해 농사를 점치는 날)에 하는 것이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오후부터 시작하는「쥐불놀이(쥐불 놓기)」는 밤으로 갈수록 장관을 이룬다. 원래 상자일上子日(음력 정월 첫 쥐날)에 논밭 둑의 쥐를 쫓기 위해 불을 놓는 것이지만 흔히들 대보름날에도 한다. 마을마다 논두렁․밭두렁에 짚을 쌓아놓고, 해가지면 일제히 “망월이야!”를 외치면서 논둑․밭둑 풀 섶에 불을 놓는다. 아이들은 깡통에 구멍을 뚫고 철사 줄을 매달아, 그 속에 관솔불을 담아 윙윙 돌리면서 망월을 외치기도 하는데, 깡통 불을 돌리며 보름달 형상을 그린다. 마을끼리 경쟁을 하는 이때가 장관이다. 깡통불은 논 밭둑 여기저기에 불을 옮겨 붙이는데 사용한다. 쥐불 놓기는 쥐와 해충이나 세균을 없애고 마른 풀잎을 제거하여 봄에 새싹이 잘 자라나게 하기 위함이다.
  보름달이 뜨기 전에 마을 동산에 올라 달맞이를 한다. 이를 망월望月이라 하고 제일 먼저 달을 본 사람이 그해 일 년 동안 재수가 좋다고 하며,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달이 뜨면 동시에「달집태우기」를 하는데 달집은 짚이나 솔가지로 미리 만들어 놓는다. 달집불이 활활 타오를수록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온다고 믿었다. 여기저기 마을마다 타오르는 달집 타는 모습은 산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강릉 경포대 달맞이는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 하여 달맞이의 명소로 꼽히는데 하늘․바다․호수․술잔, 그리고 임의 눈동자에 뜬 달이 모두 다섯이다.
  보름달 아래 하는 처녀 총각들의「탑돌이」는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일 년에 한번 있는 허가 난 연인들의 날이다. 이날 좋아하는 남자를 보고 상사병이 걸린 처녀를 ‘보름 병’에 걸렸다고도 했다.
  밤이 깊어 가면 집집마다「어부숙」을 한다. 식구마다 나이 수대로 약식을 숟갈로 떠서 한지에 담아 곱게 싸서 생년월일을 적고,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흐르는 시냇가나 바다에 차례대로 하나씩 던져 넣고 용왕님께 소원을 빈다. 어부숙은 대개 집집마다 안주인의 몫이다. 한겨울 물고기 먹이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우리 조상들의 따뜻한 지혜로움이다.
  대보름날 자정이 되면 마을마다 동제를 지낸다. 동제 제관에 선출되면(대보름 7일 이전에 선출) 그때부터 금기생활로 몸가짐을 정결히 하고, 제관 집과 성황당에는 적토赤土가 뿌려지고 금줄이 쳐진다. 금줄은 ‘왼새끼 꼬기’로 만들어진다. 동제에 쓰일 각종 제물은 제관들이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데 떡방아 찧기부터 모두 남자들의 몫이다. 대보름날 자정이 되면 모든 마을 집에 불이 꺼지고 고요한 마을에는 개도 짖지 않는다. 이때부터 성황당에선 풍요로운 생산과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제를 올린다. 이를 당제堂祭라고도 하고 고청제사固請祭祀라고도 하는데 지방마다 특유의 당제가 전해진다. 당제 집행관은 큰 소리로 제사를 진행하므로 마을 사람들은 불을 끈 채 집에서 꼼짝 않지만 진행 과정을 다 안다.
  당제를 올리는 시각에 마을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당제가 잘 올려져서 마을에 평안이 깃들기를 소원하는 가운데, 고요하고 달 밝은 정월대보름날 밤은 마을 사람들의 희망과 함께 깊어간다. 당제는 정월 14일 밤에 지내기도 한다. 이후 집집마다 안택제安宅祭를 지낼 때도 마지막엔 성황당을 다녀온다. 성황당은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이고 정신적 안식처다.
  이처럼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은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우리 조상들이 정월대보름을 비롯하여 명절마다 이어져 지켜 내려온 독특하고 다양한 세시풍속은, 인정 넘치고 순박하고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우리의 풍속이다.
  요즘 세대들이 이런 것을 알기나 할까.
  알고 싶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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