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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꽃벼루 언덕에 봄이 온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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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오락 작성일 2019-02-15 12:04 댓글 0건 조회 1,8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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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벼루 언덕에 봄이 온다기에 

내가 소학교를 이곳 여량면에서 다닐때 아우라지와 꽃벼루는 이야기가 많은 곳이였습니다.
지금은 42번 국도가 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열려 있지만 그땐 타지로 외출하자면 이 꽃벼루 산길을 완행버스로 거북이처럼 조심조심 기어 가야 했다.

입춘이지나서 봄을 찾아 이 트레킹 코스를 한번 완주 해보고 싶어서 이길을 걸어 본다.
아직 진달래 꽃은 피지 않았으나 머지않아 필것을 상상하며 이길의 옛어원를 생각 해 보니.  꽃 낭떨어지라고 하며 진달래가 많이 피는 곳이다.
요즘은 한면(面)이였던 여량면(餘糧面)과 북(北坪面)평면이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월 칠석에 다시 재상봉하는 소통의 장소로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는 미담이 있는 길이다.

그땐 여량면이 북면이고 북평은 나전 출장소 였으니까요 ?
몇일뒤 초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다시 만나 옛 소시적 이야기로 꽃피우며 이길을 걸어 보았다.
크로노스(chronos) 의 명시된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 산천초목  , 소나무 ,칡넝쿨 ,그 구분길은 옛 그대로 였다.
감회가 깊었고 ,시간과 공간의 그리움이 마음속으로 가득차 올라 왔다. 마음 뿌듯한 기쁨을 만끽하며 이런 소통이야 말로 인생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것인 아닌가 생각하는 날이였다.

이길을 걸으며 고려말 충신이 였던 (삼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야은 길재 (吉再) 선비의 회고가(回顧歌)가 머리를 스처 간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 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 런가 하노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재상들이 변질하여 조선왕조의 신하가 되어 있다. 그러나 끝까지 절개를 지킨 충신들의 망국의 한과 슬픔으로, 벼슬을 과 인연을 끊고 초야에 묻혀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폐허가 된 도읍지 개경의 옛 궁터를 돌아보고 자신의 회고를 애 끊는 마음으로 노래 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 산과 물은 그대로 있는데 뛰어난 인재는 어디에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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