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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축, K-리그 우승 성남 일화 김학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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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원주동문회일동 작성일 2006-11-27 13:26 댓글 0건 조회 2,2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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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자랑스럽습니다..리그전 내내 마음속으로 응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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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프로축구 부활 희망...故 차경복 감독에 바쳐"

[스포츠조선 2006.11.26 11:33:02]

"프로축구 부활 희망봤다"
우승 트로피 고 차경복 감독님께 바쳐
 
◇김학범 감독
  -우승 소감은.

 ▶팀의 아버님같은 고 차경복 감독님에게 우승 트로피를 바칠 수 있게 돼 감사한다. 팬 여러분들도 고맙다. 우승도 기쁘지만 오늘 경기를 통해 프로 축구가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을 본 게 의미 깊었다.

 -오늘 최전방 공격수에 우성용 대신 이따마르를 투입한 배경은.

 ▶지키려고 했다면 수원 홈에서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성용보다 이따마르를 투입함으로써 더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로 승부수를 걸 수 있다고 봤다. 상대를 제압해야만 이기고 나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번 우승으로 내년엔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A3 대회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데.

 ▶그렇다. AFC 챔피언스리그나 A3 대회를 하려면 현실적으로 많은 선수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전 포지션에 걸쳐 면밀히 검토한 후 구단과 상의, 선수 보강 계획을 짤 계획이다.

 -우승의 수훈갑을 꼽는다면.

 ▶일단 김두현에게 많은 공을 돌리고 싶다. 몸이 안좋은 상황에서도 고군분투 했다. 오늘도 링거를 맞아가며 뛰어야 할 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득점왕을 한 우성용도 좋은 활약을 했다. 미드필더진의 힘도 컸다. 수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미드필더 자원을 가진 팀이다. 그런 팀을 제압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장학영 김영철 조병국 박진섭 등 철통 수비를 구축한 수비수들에게도 공을 돌린다. 우리가 수원 수비진에 비해 신장에서 열세였지만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했다.

 -올시즌 우승까지 고비가 많았을 텐데.

 ▶지난 몇 시즌 동안 전기리그 팀들은 후기에서 꼴찌로 전락했는데 우리는 9위를 했다. 문제는 어떻게 상승세를 탈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플레이오프가 더 힘들었다.

 -1차전에서 1대0으로 이겼었는데, 2차전에 임하는 각오는 어땠나.

 ▶우리가 1차전에서 1대0으로 이겼기 때문에 자칫하면 선수들이 비겨도 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 경기에 나가기 전 이들의 얼굴을 보니 그런 마음은 읽을 수 없었다.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선수들을 보고 나 역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비기자는 마음으로 임했다면 현재 여기에 내가 없었을 수도 있다. < 수원=권영한 기자>


김학범 감독, 그대가 진정 '수퍼스타'
[스포츠월드 2006.11.27 10:15:45]

공부하는 감독… 무명에서 한국최고 지장으로
지난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후반 49분 성남 일화의 2-1 승리를 알리는 종료 휘슬이 울리자 김학범 성남 감독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거함’ 수원 삼성을 무너뜨린 기쁨의 눈물이었다. 게다가 상대팀 사령탑은 과거 한국축구의 최고 스타로 꼽히던 차범근이 아니던가. 아마추어 선수 출신으로 은행원으로 일하다 힘겹게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던 여정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으리라.
김학범. 그는 K-리그 챔피언에 오른 뒤 짧은 환호성을 지르고는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 홀로 벤치에 앉아 험난했던 지난 날을 되돌아봤다. 우승 헹가래를 받을 때까지 그는 그렇게 있었다.
●대기만성=김학범 감독은 지난 1984년 아마추어 국민은행에서 축구화를 벗고 은행 직원이 됐다. 그러나 온 몸에 흐르는 축구의 피는 그를 다시 축구장으로 불렀다. 지난 1995년부터 2년간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코치로 일한 게 지도자로서의 바탕을 닦을 좋은 기회였고, 98년 성남 일화와 인연을 맺었다. 성남에서 아버지처럼 여기는 고 차경복 감독을 만나 선수 관리법을 배웠고, 코치로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내리 3년 동안 우승하면서 이기는 법도 터득하게 됐다.
김 감독은 지난 해 사령탑을 맡자마자 성남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더니 올 해는 더욱 완성된 전술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그리고 올시즌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수원에 2연승을 거두고, 정상에 우뚝 섰다.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경기 후 김 감독을 찾아가 “축하한다”고 포옹을 했다.

●세계축구에 눈을 뜨다=지난 8월 명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또한 해외축구에도 관심이 많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결코 앞서나갈 수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축구가 열리는 곳을 찾아나선다. 지난 92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클럽선수권을 직접 봤고, 올림픽과 월드컵도 여러 차례 현장에서 지켜봤다.
코치 시절은 물론 지난 해 감독에 오른 뒤에도 오프시즌 때면 어김없이 유럽과 남미행 비행기에 올라 클럽축구를 살피고 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올 시즌 그의 작품인 4-3-3 포메이션을 완성했다. 포백 수비라인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두 명이 서는 ‘투 볼란치 시스템’이다. 독일월드컵에서 유행처럼 번진 시스템이기도 하다.
세계축구의 흐름을 끊임없이, 또 정확히 연구해온 김 감독의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앞서갈 수 있도록 공부했기에 김학범 감독은 감독 2년차에 우승컵을 얻을 수 있던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그는 이번주 중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로 날아갈 계획이다.

●이제 더 큰 무대로=한국 프로축구 정상에 오른 김 감독은 이제 아시아, 나아가 세계 무대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먼저 올 시즌 전북 현대가 우승컵을 거머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이 욕심난다. 김 감독이 수석코치로 있던 지난 2004년 성남은 이 대회 결승전에 올랐지만 1차전 원정경기를 이기고도 홈에서 0-5 대패를 당해 우승컵을 내줬다. 내년시즌 김 감독은 3년만에 한 풀기에 나선다.
또 김 감독은 내년 여름, 두 차례 대사를 치른다. 한·중·일 클럽 챔피언들이 왕중왕을 가리는 A3 챔피언스컵과 세계 각국의 유명 클럽들이 참가하는 피스컵이다. 그동안 갈고닦은 김 감독의 지략이 세계 무대에서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국영호 기자

iam905@sportsworldi.com
-건강한 웃음 푸른 희망, 스포츠월드(www.sportsworldi.com)-
 
성남 우승 주역 3인방…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조선일보 2006.11.27 08:43:32]

[조선일보 민학수기자]변변치 못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은행 업무를 보다 지도자로 대기만성한 김학범 감독, 수원 삼성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새 팀에서 꿈을 키웠던 김두현,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다 결정적인 순간에 돌아온 브라질 출신의 모따….
구단 운영에 돈을 아끼지 않는 성남 일화지만 통산 7번째 우승 뒤엔 돈보다 진한 사람 이야기가 있었다. 성남은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6 프로축구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수원 삼성을 2대1로 이기고 1차전 1대0 승리를 포함해 종합 전적 3대1로 우승을 차지했다. 2003년 이후 3년 만의 정상 복귀이자 국내 프로팀 가운데 최다인 7번째 ‘우승 별’을 가슴에 달았다. 성남은 모따가 전반 25분과 후반 20분 연속 골을 넣었고, 수원은 후반 30분 실바가 한 골을 만회했다.
성남 김학범(46) 감독은 우승이 확정된 순간 눈물을 터뜨렸다.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물러섰던 것처럼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었다”는 그의 말은 솔직담백 했다.
한 번도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아본 적이 없는 김학범 감독은 강릉농공고와 명지대를 거쳐 1991년까지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뛰었다. 그는 국민은행에서 대부분 코치 생활을 했지만 1992년부터 6개월간, 국민은행 축구팀이 1997년 말 IMF 위기로 잠시 해체된 후 7개월 동안 은행 업무를 보기도 했다. 실적이 좋아 우수 행원으로 뽑히기도 했던 김 감독은 “선수 생활 때만큼 열심히 하면 됐지만, 축구가 좋아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1998년부터 성남 코치를 맡으면서 경기 비디오를 연구하고, 틈만 나면 자비로 해외 연수를 하면서 눈을 키웠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지휘했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비쇼베츠 감독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한 것도 도움이 됐다. “내가 좋아서 하는 축구라서 밤을 새워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 감독은 고(故) 차경복 감독 후임으로 2005년 성남 일화의 감독을 맡았다. 그는 뛰어난 경기 분석과 지도 능력으로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던 다른 팀 감독 부럽지 않게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플레이메이커를 맡고 있는 김두현은 “감독님이 말한 대로 뛰면 신기할 정도로 다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경기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김두현은 수원 시절 본인이 원하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1년6개월 전 성남으로 이적했다. “수원을 상대로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던 그는 국가대표와 프로경기를 오가면서 피로가 누적됐지만, 경기 전날 링거를 맞으면서도 출장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두 방을 터뜨린 브라질 출신 모따는 “시즌 초 중상을 입은 뒤 오랫동안 재활을 했지만 참고 기다려 준 감독과 동료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학수기자 haksoo@chosun.com )<조선일보 독자를 위한 무료 모바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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