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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제시대 강릉농업학교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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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영각
작성일 2007-03-24 00:01
댓글 0건
조회 3,327회
본문
지난 3월 9일 시내 아담한 음식점에서 홍순길(19),권오식(23),박병설(34)
前 現職 회장님 세 분과 20기 선배님 김영택,서정호,김남식 이렇게 세 분
모두 여섯 분이 母校와 동창회 발전을 위하여 懇談의 자리를 마련하셨고,
그 자리에서 소중한 歷史的 使料談 들이 많이 오갔답니다.
특히 日帝 强占期 시절의 母校 校歌를 話頭로 선배님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우리말로 중지의 뜻을 모아 번역도 하셨답니다.
그 후 홍순길 회장님과 김영택 선배님의 高見을 참고하여 우리 동문들이
알고 있어야 할 事項으로 생각되어 부족한 문장력으로나마 게시판에 올리니
잘못된 점이나 참고사항이 있으면 高見을 주시어 다같이 公有하며 동창회
발전을 위하여 애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928년 開校後 1945년 解放時 까지의 母校 校歌는 당연히 日本語였으며
아쉽게도 作詞및 作曲者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시절의 江陵農業學校는 東海岸(고성~포항까지) 최고의 명문고 였으며
여러 지방의 학생들이 유학을 많이 왔었답니다.
그 시절 모교는 舊 江陵女高자리에 있었으며 강릉여고는 하부산의 鄕校에서
공부했고 모교가 지금의 입압동 신설 건물로 이사 오며 강릉여고는 하부산에서
옥천동으로 오게 되었답니다.
당시 母校 敎師는 모두 日本人 이었고 韓國人은 두 분이 계셨으며 그 한분이
해방 후 初代 교장 선생님이셨던 최용근 님이시고 또 한분은 전라도 분이셨는데
그 분은 해방과 동시에 고향으로 가셨답니다.
해방 후 過渡 정부시절 최용근 교장선생님께서는 敎師人選 및 學校運營 등의
전반에 걸쳐서 불철주야 道敎育廳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실질적인 명문고의
基盤을 造成하셨다고 선배님들은 말씀하셨고 그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기 선배님들이 사업계획을 構想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방 후 全國高等學校 校歌 쿵쿠르가 있었는데 모교 교가가 2등을 수상했고
1등을 차지한 교가는 “하부산에 봄꽃 피니 아름다워라....”로 시작하는
강릉여고 校歌 이었답니다.
그 시절 政治的인 背景과 아픈 過去는 생각하지 말고 단지 자랑스러운 그때
그 교가를 적어 봅니다.
1
世界に誇る金剛のその 온 누리에 뽐내는 금강의
名も知るき嶺東は 그 이름도 빛나는 영동
江陵平野のただなに 강릉 벌 한 복판에서
國の元ちょう農業の 나라의 으뜸인 농업의 길을
道に勤む學び夫が 재촉하고 배우는 사나이들의
意志の剛健君知るや 굳센 의지를 알지어다.
2
校舍の窓に仰ぎ見る 교실 창으로 바라보는
大關嶺の朝日影 대관령의 밝은 아침햇살
淸き流るる南大川 유유히 흐르는 맑은 남대천
怒濤を逆卷く東海の 억센 파도를 되감는 동해
鏡浦を照らす夕陽は 경포를 비추는 저녁노을은
希望の光と燃ゆるかな 희망의 빛으로 타오른다.
3
四季の移りに替り行く 사계를 쫓아 자태를 바꾸는
農圃の姿望むれば 들녘의 모습을 바라보면
力加えし後しるき 힘들인 보람을 족히 알지어다.
芽吹き花立つほうちょうの 싹트고 꽃피워 풍년을 기약하고
實りを示す嬉しさは 무르익음을 보여주는 즐거움은
努力の歡喜これぞこれ 이것이 노력의 환희가 아니겠냐.
4
いざ立むかな我が朋よ 이제 일어서자 우리 벗들이여
自治協同を則となし 자치와 협동을 불변의 도리로 삼고
至誠 自重の德を積み 지성과 자중의 덕을 쌓아서
始終やまずの心持て 시종일관하는 정신을 숭상하며
我が校風の勳を 우리 교풍의 아름답고 훌륭함을
八千代の後に遺さずや 만세 훗날까지 어김없이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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