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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돈열 교수의 도문대작 - ② 강릉 기동이네 장(藏)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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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사람들은 '국수'를 '국시'라고 부른다. 강릉에는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고, ‘국시’는‘밀가리’로 만든 것이라는 유모어도 있다. 일설에는 국시와 국수는 다른 음식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국시는 경상도와 강원도 전라도 함경도에서 주로 쓰는 방언으로 ‘국시’와 ‘국수’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강릉은 장칼국수의 고장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강릉이 장칼국수의 본향이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없었던 길도 사람이 다니기 시작하면 길이 되듯이 전통음식을 지키려는 많은 사람들의 길을 내고 이어간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강릉의 장칼국수는 '고추장'을 양념으로 맛을 낸 특유의 형태로 ‘초당두부’, ‘강릉옹심이’, ‘고지국’과 더불어 강릉을 대표하는 토속음식이다. 그것은 마치 예산시장의 국밥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다.
강릉에는 과거 <용비집> 과 <벌집> 등 노포들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 모를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에 장칼국수집이 늘어나기 시작해 현재는 약 40여 개의 전문점이 문을 열고, 각 집마다 전통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레시피를 개발하여 개성 있는 장칼국수를 선보이고 있다.
필자가 찾아간 곳은 강릉시 포남동 한솔초등학교 뒤편과 마주한 <기동이네 칼국수>, 4차선 대로변에 위치해 찾기도 쉬운 소박하고 아담한 음식점이다.
앞서 소개한 홍천의 <생곡막국수>는 외지인이 90%가량이 찾는 백년가게였지만, <기동이네 칼국수>는 외지인보다 장칼국수의 진정한 맛을 아는 본고장 강릉인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기동이네 장칼국수>는 비쥬얼 자체가 소박하고 신선하다. 적당한 굵기와 적당한 양의 연갈색을 띠는 면발 위에 얹힌 김과 들깨가루, 애호박이 미리 봄을 알리는 듯 향긋하게 느껴진다.
장칼국수의 생명은 당연히 장맛이다. 이 집의 장맛은 일품이다. 장은 가까운 사천 본가에서 점주가 직접 담근다. 어디 장뿐이랴. 식재료로 쓰는 고추와 무 배추 역시 텃밭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서 사용한다. 이른바 로컬-푸드(Local- Food)점이다.
같은 강릉에서도 가게에 따라 고기로 육수를 내는 집이 있는가 하면, 바다를 끼고 있어서인가 대체로 멸치, 홍합 등 해물 육수를 많이 사용하는 집도 있다. 고기 육수는 고기의 깊은 맛이 있는 반면, 해물 육수는 시원하고 먹은 후 뒤끝이 깔끔하다.
반면 춘천과 원주로 대표되는 영서지역은 칼칼하거나 얼큰한 강릉 스타일의 장칼국수와는 다르게 된장을 양념으로 국물을 내 구수한 맛을 낸다. 정선이나 평창과 같이 영동과 영서 간 생활권이 겹치는 경우는 막장을 메인으로 쓰고 고추장이 조금 들어가는 퓨전 스타일이 특징이다.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간장과 된장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다.
장(藏)의 역사는 길다 못해 아득하기까지 하다. 인류가 콩을 재료로 한 발효식품 장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은 기원전 2838년 기록된 중국의 고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선장양(善藏釀)’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고구려에서 술을 비롯한 장 등 발효식품을 많이 만들어 먹는다는 뜻이라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으로 간장을 비롯한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등 종류가 많기도 하지만, 장은 김치와 함께 한국인들의 섭생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고유의 주 양념이자 조미료다. 또한, 고구려의 고분인 ‘안악 삼호분’의 벽화에는 우물가에 장독대가 있는 것으로 봐서 적어도 고구려 시대에 발효음식이 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장의 역사성이 깊다는 뜻이다.
장칼국수에 쓰이는 고추장은 간장, 된장보다 늦게 개발되었는데 그것은 고추장이 개발된 것은 당연히 고추가 도입된 이후이기 때문이다. 16세기 말~17세기경 고추 재배가 널리 보급되면서 된장, 간장에 매운맛을 첨가 시키는 방법으로 발달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 제조법이 꾸준히 전래되면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간장이 처음 기록된 문서는 <삼국사기>로 683년(신문왕 3년)에 왕비를 맞을 때 폐백 품목으로 간장과 된장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간장과 된장을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된장은 이웃 나라인 중국에도 전래되어 중국의 <위지>에 "고구려에서 장양을 잘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곧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는 것으로 된장 냄새를 고려취(高麗臭)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의 메주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에서는 종래의 장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장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중국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제민요술>을 보면 농업기술서에서 된장을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증보산림경제,1766>에 나온 기록을 보면 고추장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말린 생선, 다시마 등을 이용해 햇볕에 숙성시켜 먹었다고 나와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고추장과 흡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영조 때 이표가 쓴 <역주 방문, 1800년대 중엽>, <규합총서,1815년> 등에 고추장 담는 법이 제시되고 있다. 〔자료/디지털 집현전 참조〕
결론적으로 전통식품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장의 재료인 콩은 주산지가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이곳에서 발달한 제조법이 중국에 퍼져 들어갔고, 일본의 '미소'도 고구려의 '말장'이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한국은 장에 관한 한 원조(元祖)국가라는 것이 점차 선명해져 가고 있다.
모두에서 밝혔듯이 강릉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맛집 <기동이네 장칼국수> 면은 고객 대부분이 모르고 먹듯 메밀국수가 아니라 우리쌀 흑미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식재료의 배합비율은 나름 이 집의 비법이니 알 수 없으나, 밀가루에 흑미 가루를 잘 배합하여 면을 뽑아내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흑미는 말 그대로 검은색이 나는 쌀로 검은 겉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통째 갈아 만든 쌀이다. 흑미로 밥을 지을 경우, 과정에서 식물 섬유질,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 물질 등이 그대로 보존되며, 현미보다 칼로리가 적고 영양소 함량이 높다. 또한 현미에 비해 고소하고 쫄깃하며 밥맛도 좋아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기도 한다.
면발은 쫄깃하지도 지나치게 부드럽지도 않으며 식감을 느끼기에 딱 좋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먹는 막국수 비주얼을 닮아서인가 흑미가 부재료로 쓰인다는 건강한 느낌도 있지만, 면에서 흑미 특유의 맛을 굳이 찾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김치는 면과 함께 뚝배기에 담아서 나오는데 접시에 덜어서 먹으니 위생적이다. 다만 김치 겉절이를 기대했는데 살짝 실망이다. 하지만 김치가 지나치게 달거나 짜지 않고 살짝 덜 익은 깍두기가 필자가 기대했던 김치 겉저리를 충분히 대체한다.
장칼국수는 고추장 양념 때문에 바지락 칼국수 등 맑은 국물 칼국수보다 더 천천히 식는 특성이 있다. 잠시 식을 때를 기다렸다가 먹던가 입과 식도를 데지 않게 시식하듯 천천히 먹거나 앞접시를 달라고 해서 덜어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집 장칼국수는 강릉의 여느 장칼국수에 비해 맛이 순한 편이다. 덜 매운 대신 깊은 맛이 나고 김과 들깨가루가 적당히 뿌려져 있어 잘 섞으면 국물을 더 고소하게 먹을 수 있다.
칼국수의 양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맛집을 취재하려니 골고루 맛보지 않을 수 없어 밥 한 공기를 시켰는데 곱슬한 흑미밥이다. 약간 식은 밥을 국물에 말아 먹으니 국물이 순하고 부드러운 편이라 그런지 목 넘김이 좋다.
소담한 강릉 맛집 <기동이네 장칼국수>는 도심이나 다름없어 접근성이나 찾기는 쉬우나 흠이라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가게 뒤편 골목길에는 혼잡도가 덜하고 주차공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집의 메인 메뉴는 물론 장칼국수 하나이고, 가격은 9,000원으로 착하기까지 하다. 계절 메뉴로 <콩국수>와 <떡만두국>이 있는데 여름철 콩국수가 별미라는 단골들의 전언이다.
<기동이네 장칼국수>를 먹으러 가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영업시간이다. 영업전략(?)인지 주인의 경영철학 때문인지 오픈 시간 11시, 크로스 시간은 15시로 즉,점심시간 외 영업을 하지 않는다. 토요일은 휴무일이다.
강릉에는 매년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이 되면 장칼국수의 도시답게 칼국수를 주제로 한 누들축제(Noodle Festival)가 열린다.
소박하고 친근감 있는 상호 <기동이네 장칼국수>, 강릉에 오고 갈때 마다 다시 찾기로 한다. 특히 올 여름, 이집의 별미라는 콩국수가 기대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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