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동문 문화예술

에페소 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5-03-03 11:26 댓글 0건 조회 78회

본문

20250121_142124.jpg

 

20250121_151652.jpg

 

 

                에페소

 

 

건축물도 길이 남을 하나에 훌륭한 문화라 본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앞으로는 문화가 밥 먹여주는 세상이 올 것이다.

지금도 잘 살고 잘 나가는 나라에서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는 것이다.

문화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는 역시 책일 것이다.

이 책을 보관하면서 선대의 문화를 후대에 연결시켜 주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다.

로마의 집정관 켈수스를 위해 그의 아들이 지었다는 도서관은 2,000여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위용과 자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다.

아름답게 장식한 건물이 도서관이라 칭하기엔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모습이다.

지진이 훑고 간 그 곳에서 그렇게 잘 보존 되어 있다는 것만 해도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 덕분에 후세 사람들이 열광하는 명소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이곳에도 로마시대에 문화유적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원형극장이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렇게 큰 원형극장을 산허리를 깎아서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서도 경이로움을 떨칠 길 없다.

지금처럼 중장비가 발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 그렇게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벌릴 수 있다는 것과

 함께 그런 시설물을 지으려했던 발상 자체가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도전적이고 창의적이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규모로 보았을 때 25,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했는데 이 정도의 크기라면

 당시에 이 지역에 인구는 그 수용인원의 10배 정도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 극장 안에 무대에 서서 스피커나 마이크 없이 노래를 부르면 저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도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음향학적으로도 완벽하게 꾸며졌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다는 것을 몸소 체험도 해 보았다.

그저 신기롭고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무역도시가 되다보니 많은 자본들이 유입되면서 인구도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덕분에 관청도 생기고 호족이나 귀족계급들도 생기면서 새로운 생활문화가 발생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당시에 문화상의 흔적 중에 공중화장실을 들여다본다.

변을 볼 수 있는 틀들이 기역자로 만들어졌는데 이 시대처럼 칸막이는 없었고 여자화장실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칸막이는 당시에 옷들이 현재처럼 바지스타일이 아니고 치마 스타일이라 굳이 칸막이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으리라 보며, 여자 화장실이 없는 것은 그들이 바깥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제한되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한다고 한다.

더 특이한 것은 이 공중화장실은 당시에도 수세식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바로 위에

 공중목욕탕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이용하여 용변을 씻어 내렸다고 한다.

그 씻어 내린 물이 어디로 어떻게 흘렀는지는 건물 사이로 깔린 인조토관을 통해서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공동화장실 바로 위에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도 화려한 건축물로 지어졌는데 지붕은 당연히 없어졌고 기둥과 벽면 그리고 공동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널따란 욕조가 보인다.

이 시설을 아무나 들락거리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바로 길 건너에 귀족과 호족 그리고 

고관들이나 그 가족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힘깨나 있는 사람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보여졌다.

 

셀수스 도서관에서 출발하여 언덕 위에 관청가까지는 경사진 도로이다.

물론 마차도 다닐 정도의 도로인데 당시에 보도블럭으로 대리석을 깔아 놓은 모습도 보인다.

물론 일부 파손된 부분은 현대판 자재로 바꿔서 깔아 놓기도 했지만 옛날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여기에 깔아 놓은 대리석 보도블럭은 건축물을 짓다가 버려진 잔재를 이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축 부산물도 깔끔하게 재활용 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언덕 위에 올라가면 광장도 보이고 산쪽으로 수많은 건축물들의 잔재들이 보인다.

일부 덜 부서진 잔재는 똑 바로 세워 놓았으나 그 형체나 얼개를 볼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구어낸 벽돌로 만들어진 아치형 건축물들도 간간히 보이고 있으나 유적에 문외한인 우리가

 보았을 때엔 그저 그런 것도 있구나 할 정도이다.

여기에도 지진으로 파손된 건축물 잔재들이 수없이 널브러져있다.

주어다가 우리나라에 갖다 놓았으면 훌륭한 박물관 몇 개는 채울 정도의 잔재물들이 쌓여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죄다 대리석으로 갈고 다듬고 장식을 한 건축 잔재라 하나같이 예술적 풍미가 풍김은 물론

 건축 유물로서의 가치도 높이 평가될 것 같다.

하도 그런 것이 많아서 그저 옛날 건축물 잔재 정도로 밖에 안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하나가 

귀한 물건임에는 틀림없었다.

 

원형극장에서 고관들이나 귀족들이 모여 살던 공간까지 오는 길목에는 특이한 장면의 부조도

 보인다.

이 거리가 당시에 번화가였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유흥업소도 발달한 것 같았는데 미성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발자국

 형상을 그려 놓았다.

그 발자국 크기보다 작은 사람은 유흥업소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잣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