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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남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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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남촌에는
봄은 어떻게 오는 것이 가장 맛깔날까?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아른
아른거리면서 오는 것일까.
햇볕이 쬐는 담장 옆에 서 있으면 사르르 녹는 듯 한 느낌으로 오는 것일까.
바람이 갑자기 부드럽고 온화하게 가슴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검은 색으로 일관하던 옷 색깔이 환한 빛으로 변하면서 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달래, 냉이, 씀바귀, 봄동이 식탁에 올라오는 것에서 그 맛이 날까.
봄의 색깔을 굳이 찾는다면 어떤 것일까?
갯가에 피어난 회색의 버드나무 꽃빛깔일까,
복숭아나 살구꽃 같은 연분홍빛일까,
복수초나 개나리, 영춘화, 수선화같은 노란색일까,
진달래나 철쭉같이 핑크 빛일까,
산천초목들이 새싹을 내밀 때 나타나는 연두빛일까.
겨울이 깊으면 봄이 더 기다려지는 법이다.
봄은 온도로 온다기보다 마음속으로 먼저 오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게 진정한 봄이 아닐는지.
올 겨울은 너무 추웠다.
우리 지역의 2월에도 영하 10여도 이하로 1주일 내내 떨어졌던 맹추위도 있었다.
이런 추위도 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기위한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굳이 기계적으로 봄을 구분한다면 3월 1일부터일 것이다.
새해가 1월 1일이듯 봄을 그렇게 날짜로 못 박아서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잣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통상적으로 2월을 지나고 나면 봄 냄새가 물씬 나는 계절이 오는 것이 맞긴 맞다.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2월이 짧은 것은 봄을 하루라도 빨리 맞이하기 위함이다.”라고.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아이들의 개학이 3월 1일이고 보면 그 때를 봄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기 쉽다는 것이다.
2월이 아무리 춥고 썰렁하다 하더라도 이미 봄은 어디선가 오고 있을 것이다.
봄은 남쪽나라에서 먼저 출발하고 가을이 북쪽나라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남쪽나라엔 이미 봄의 향연이 서서히 피어오를지도 모른다.
개나리나 진달래가 피는 것도 남쪽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그 논리는 타당한 것 같다.
기계적인 봄의 시작점도 이제 열흘 정도 밖에 안 남았다.
매섭게 춥던 겨울도 서서히 약화가 되면서 봄에게 그 자리를 내 주고 있다고 본다.
겨울은 추워야 맛인데 올 같은 경우는 그 맛은 제대로 보았지만 눈 구경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이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 가만은 그 자연도 인간의 구미에 맞게 제공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겨울의 별미였던 눈, 바람, 추위가 사라지면서 봄의 별미인 화사함, 새 생명, 온화함, 봄바람이
그 자리를 꿰차게 될 것이다.
봄은 뭐니 뭐니 해도 새 생명이 싹트는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이 자연의 향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봄바람이 가슴으로 사정없이 들어오는데 마음이 들뜨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풍미가 떨어
진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결코 매력적인 인간상이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한지라 봄의 향연을 같이 만끽할 수 있는 자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고 보니 봄바람이 뭣인지 감각이 무뎌져서 잘 못 느끼겠다고 인식된다면 햇볕 잘
드는 시골 담장에 쪼그리고 앉아서 자라나는 이름 모를 풀들이 싹트는 모습이라도 바라보면
조그마한 감동이라도 올 것이다.
봄은 역시 봄바람으로부터 오는 가부다.
같은 바람이지만 봄에 부는 바람은 유독 우리 인간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고 한다.
왜 그렇냐고 묻지마라.
조물주가 그렇게 세팅을 해 놓았으니까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봄을 조금이나마 먼저 찾아보려고 지난 주말에 구정 솔향수목원을 찾았다.
제일 먼저 안부를 물었던 식물은 봄에 전령사라고 칭하는 복수초였다.
그 수목원에 옥잠화 군락지 초입에 복수초를 심어 놓은 조그마한 영역이 있다.
대규모의 군락이 아니라 서너 너덧 뿌리 정도가 자라고 있는데 그 수목원이 생긴지 10여년이
넘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심었던 개체 이상으로 번지지 못하고 그대로 이다.
싹은 내 밀었는데 꽃은 좀 더 있어야 필 것 같았다.
세월이 좋다보니 굳이 봄에 피는 꽃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쌍둥이 원형 온실에는 봄이 와도 한 참 더 멀리 온 것 같았고 그 위에 초대형 비닐온실에 있는
야자수와 그 밑에 심어 놓은 꽃들도 각자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옛날처럼 봄이 되어야지만 꽃을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언제고 볼 수 있다 보니 봄꽃의
존귀함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봄꽃의 신비함도 사라져가는 듯 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역시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 그 맛이 더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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