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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브존의 Sumela Mona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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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브존의 Sumela Monastery
지도상에 보면 유럽의 지중해 근처에 흑해(black sea)라는 바다가 있다.
우리와는 하도 멀어서 그런 바다가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그 지역에서 그 바다를 가지고
무역과 생계에 목줄을 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아나톨리아 반도와 서쪽에 있는 바다로 조지아, 러시아, 우크라니아, 몰디바,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접하고 있는 길쭉한 감자 모양의 바다라 연상하면 될 것이다.
튀르키예가 이 바다에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해안선 서북쪽 끝 부분에
트라브존이라는 인구 70여만 명의 큰 도시가 하나 있다.
거기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조지아와 국경선이 나타나는 곳이라 보면 될 것이다.
트라브존은 이스탄불이나 앙카라와 워낙 거리가 멀다보니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한계가 있는
터이라 비행장도 만들어져 있다.
이스탄불에서 트라브존까지 흑해 해변에는 흑해를 바라다보는 뷰를 바탕으로 집들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
그 나라나 우리나라나 해변을 바라보면서 지어진 집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해 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동해안 같은 경우는 절벽이 너무 험해서 집 자체를 지을 수 없지만 흑해를 끼고 있는
튀르키예 같은 경우 해안선이 구릉지와 같이 이어지는 터에 해변을 바라보고 지은 집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트라브죤에서 반대편 흑해를 바라보면 요즘 러시아와 전쟁을 치루고 있는 우크라니아가 있다고 한다.
직접 보이지 않아서 실감은 덜 나지만 전쟁을 하는 나라와 바다를 같이 쓰고 있다는 데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트라브존 시내의 관광은 이스탄불처럼 휘황찬란하거나 웅장함보다는 그 지역에 특색을 제대로
구현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먼저 보즈테페힐이라는 언덕인데 여기에는 흑해를 한 눈데 바라다 볼 수 있는 기가 막힌 전망대라
보면 될 것이다.
남의 나라 바닷가를 혼이 빠지게 볼 이유야 없겠지만 거기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흑해의 장면이
오랫동안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던 날이 장날이 아니라 그런지 날씨가 흘찍하고 가랑비마저 오는 바람에 흑해 구경은커녕 자욱한
안개 속만 보고 그냥 내려왔다.
시내에는 트라브존 바자르라 일컬어지는 전통시장과 신 시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코스로 안내해 준다.
그 나라만이 가지는 시장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인데 유명하다는 패션은 우리나라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재래시장에서는 투르키예 특유의 음식과 농산물, 그리고 그 가공품이
다채롭게 전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단 공원에는 물에 빠져 몰락하는 투르키예를 건져낸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동상을 중심으로
유럽풍의 정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쪽도 유럽이라고 흘찍한 날씨가 이어지는 터에 그 지역 특유의 으스스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트라브존을 간다는 것은 시내 관광 코스를 도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 근처 산악지방에 있는 수멜라
수도원을 보기 위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도원은 유럽 중세에 종교를 중심으로 생활공동체 역할을 하면서 번성했던 일종의 삶에 형태였다고
본다.
거기서 농사도 짓고 가공도 하고 특별한 물건도 만들어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경제생활이
이루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물론 종교가 구심점이 되어서 그 안에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고 본다.
트라브존에서 버스로 1시간 이상을 산중에 나타나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흑해라는 바다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위도가 상당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기후는 해양성을 띠고
있는 것 같다.
구불구불한 계곡과 산중을 따라서 가는 길은 우리나라 산 속 깊숙이에 지어진 사찰로 들어가는
느낌과 유사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겨울철이라 계곡 양쪽 산에는 월동을 하고 있는 앙상한 나무들이 주류를 이루고 사이사이에
침엽수가 섞여 있어서 제법 조화로운 느낌도 주고 있었다.
트라브존에 날씨와 마찬가지로 흘찍하면서 가랑비까지 오는 터에 우산을 챙겨야 할 정도이다.
수멜라 수도원까지 가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간 다음 도로가 험악한 곳 근처에서 소형버스로
갈아탄 언덕을 올라갔다.
해발 1,200미터 위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이 수도원은 1,600년 전 그리스에서 온 2명의 사제에
의해서 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저히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바위산인데 그 중턱의 바위를 깨어서 수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종교의 힘이 아니고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데 그걸 현실화시켰다는데서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23년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그리스계 수사들이 제 나라고 돌아가고 그곳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을 다시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도원만이 가지는 특이한 점은 그 험악한 바위산 중턱을 뚫어서 공간을 만든 후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너무 험악하여 그런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낙상이나 안전사고도 많이 일어 났을 것 같은 예감이
아주 강하게 들어온다.
현대판 천공기나 드릴 같은 것을 가지고도 그렇게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 지형 자체가 작업하기에
용이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공간에 종교와 관련된 흔적을 엄청나게 많이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수도원인 만큼 종교의식을 하는데 중요한 공간을 할애하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주거나 식당
그리고 화장실 같은 것도 그 공간에 다 배치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 수도원까지 올라가자면 설설 기어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따라 가야하는데 맨몸으로 가는
것도 결코 용이치 않다.
아차, 잘못하여 한 눈을 팔다보면 옆 낭떠러지에 그냥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급경사의 계단이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에 와서 수도를 하는 수사와 관련된 성직자들은 제대로 된 수도생활을 위하여 벽면이나
천장 면을 온통 성경과 관련된 벽화나 천장화로 그려 놓았다.
이 수도원에 들어오는 순간 저절로 해당 종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도록 외관부터 조성을 해 놓았다는
것이다.
바위 밑을 깎아서 만든 곳이라 비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구조이다.
위쪽에 엄청나게 큰 바위산이 앞쪽으로 좀 기우러져 있는 바람에 여간 세찬 비바람이 불지 않는
한 수도원쪽으로 빗물이 내리치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지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비를 직접 맞을 일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덕분에 수도원 안팎에 그려진 벽화나 천정화가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 벽화나 천정화가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 유명한 성당처럼 명화가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종교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정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에서 사람의 얼굴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이 벽화나 천정화는 프레스코 방식(회칠을 한 다음 그 위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으로 바티칸
성당의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임)으로 그려졌기에 비를 맞는다거나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회칠이 망가지면서 그림 자체가 훼손되는 맹점이 있었다.
수멜라 수도원에 프레스코 벽화나 천정화가 훼손된 가장 큰 이유는 이슬람이 이쪽으로 오면서
자신의 종교 교리와 맞지 않는다하여 얼굴부분만 훼손해 버렸다고 한다.
장구한 시간동안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종교의 부침도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날씨가 흘찍하면서 안개가 너무 짙어서 수도원만 집중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산 중턱에 지어진 수도원이라 거기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또 다른 풍광을 선사했을 터인데 그걸
보지 못하고 짙은 안개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가까이에 있다면 언제든지 와서 볼 수 있지만 죽기 전에 다시 보기에는 다 틀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아쉬움이 커진다.
둘러보는 시간만큼은 세속의 번민을 끊어 버리고 그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다 되자 이내 그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다.
올라올 때에는 잘 안보였던 주변의 식생도 다시 보게 되었다.
이슬람이란 종교의 속성 중에 불교와 마찬가지로 생명체는 소소한 것이라도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교리가 여기저기서 보여진다.
도로에도 만드는 과정에서도 큰 나무가 있으면 잘라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켜 가면서 뚫은
관경도 볼 수 있었다.
개 눈에는 뭣만 띈다고 수멜라 수도원으로 가는 계곡에는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만병초가
지천에 깔려 있었다.
만병초는 특성상 바람에 약하고 습한 환경을 좋아 하는 특성이 있는데 여기가 적지인 것 같았다.
게다가 토양도 강산성이라 하는데 이쪽의 땅은 그런 조건을 잘 갖추어진 곳 같았다.
수멜라 수도원으로 관광을 가거나 기도발을 세우기 위하여 방문하는 사람들은 5월이 되면 덤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만병초 꽃을 마음껏 볼 수 있는 특혜까지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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