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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땅, 파묵칼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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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땅, 파묵칼레 2
파묵칼레가 더 유명해 진 것은 여기에 노천 온천이 솟구치면서 아름다운 장면까지 연출하다보니
옛날에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였다.
출발점은 온천물을 이용하여 건강증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당시에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병마에 시달리면서 고생하던 사람이 병 치료를 위하여
이쪽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의료나 치료를 위한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하여 히에라폴리스라 한다.
파묵칼레 언덕 중앙지점에 원형극장 자리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12,000명 정도라 하는데 로마시대에 이런 원형극장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큰 도시에는 하나씩 다 갖추어졌다고 한다.
원형극장의 크기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 10명 중 1명이 관람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히에라폴리스에 살았던 사람들이 얼추 짐작하여 120,000명 정도가 되었으리라 본다.
지금도 12만 정도의 인구라면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닌데 로마시대에 그런 정도의 인구가 모여
살았다면 엄청나게 큰 도시임에 틀림없었다고 한다.
온천을 통하여 아픈 사람들의 치료도시로 발달하다보니 또 특이한 장면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세기의 미인이었던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에서 병치레를 위한 요양을
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당시에 유명한 사람들이 병마를 치료하기 위하여 여기로 모여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도시가
품격이 높은 도시로 변모했던 것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당시에 묘지라 한다.
아픈 사람들이 병 치료를 위하여 와서 완치되어 다시 돌아가면 좋겠지만 지금처럼 차나 비행기
맘대로 다니던 시절은 아니었다고 본다.
당시에 멀쩡한 사람도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엄청 멀고 힘든 판에 아픈 몸을 이끌고 와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용이치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요양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죽으면 그 시체를 다시 본 고향으로
가져갈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용양을 하다가 죽으면 여기에 묻힐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돈도 많고 지체도 높고 유명세도 있던 사람들이 죽음으로서 묘지문화도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 가면 낙양성에 있는 심리허라는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묘지가 있다.
거기에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웠던 흑지상지 장군의 묘도 있다고 한다.
그처럼 이 파묵칼레에서 요양을 하던 유명인사가 죽으면서 묘지도 그 인사의 지위에 걸맞게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묘지 문화가 생긴 것이다.
당시에 이곳에 도시는 그냥 사람들이 초가삼간 같은 것을 지어 놓고 온천욕이나 즐기던
방식으로 발전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12,000석 규모의 원형극장이 있을 정도가 되다보니 시가지는 로마나 그리스의 신전처럼
그렇게 만들어졌었던 것 같다.
돌로 다듬어 관청을 짓고 귀족들이 살던 집들 또한 석재로 다듬어 마치 신전처럼 만들었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아름답게 다듬어 놓은 석재 기둥이나 머리기둥이 지천에 깔려 있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것을 복원하여 제자리에 다 꿰어 맞추어 놓는데 만 해도 몇 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영화가 있으면 쇠락도 따르는 법, 아무리 좋은 경치와 특이한 환경, 치료에 최선책이라 하는
온천물이 흐른다 하여도 그와 반대급부의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천이 많다는 것은 화산활동이나 지진이 많다는 결정적 증좌인 것이다.
이렇게 치료와 휴양도시로 명성을 날리던 히에라폴리스도 큰 지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폐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예 복구도 못 할 정도로 폐허가 된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당시에 화려하고 웅장했던 도시의 모습이 폐허가 된 잔재에서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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