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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에 밥말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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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에 밥말아 먹고
지금처럼 반찬 흔한 시대도 유사이래 없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반찬이 마트나 반찬가게에 가면 우리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고 있다.
종류도 너무 많아서 죽기 전까지 다 맛 볼 수도 없을 정도인 것 같다.
이렇게 반찬의 세계가 다양화될 줄 예전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예전에는 밥반찬이라곤 된장과 간장,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 들기름이라도 몇 방울 있으면 금상첨화였던 시절도 있었다.
계란과 고기는 제사나 집안 대소사 때나 맛 볼 수 있던 반찬이었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반찬도 가난했던 것 같다.
반찬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에는 맹물도 반찬의 역할을 대신 한 적도 있었다.
밥은 반찬이 따라줘야지만 제 맛이 나면서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게 돼 있다.
목구멍으로 잘 안 넘어가는 밥을 넘기기 위해서 찾아낸 것이 바로 물이었다.
물을 밥에 말아 먹으면 그럭저럭 목넘김을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물보다 좀 더 매력적이었던 반찬은 역시 김치였을 것이다.
꽁보리밥에 김치 쪼가리만 있으면 훌륭한 밥상이었던 것이다.
고형물의 김치가 없으면 그 대안으로 김칫국물이 있었다.
찝찔한 김치 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보면 그 나름대로 특별한 맛이 나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는 김치 이외에 마땅한 반찬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김칫독 밑바닥에 고여 있던 국물도
훌륭한 반찬거리가 된 것이다.
저는 지금도 김치담은 용기 밑에 고여 있는 국물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
김칫국물도 옛날 맛이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갖은 양념을 다 넣어서 만들지 않았다.
특별한 경우엔 새우젓 몇 마리가 떠 있을 정도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금에 고춧가루가
조금 떠 있을 정도였다.
좀 더 소박하게 표현한다면 담백한 맛은 그 어디에서도 따라갈 수 없겠지만 지금과 같은
요란한 맛은 절대로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칫국물에 밥을 말아보면 밥알이 죄다 분리된다.
시큼한 김치 국물이라면 밥도 밥식혜처럼 변해버린다.
옛날같이 담백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추억의 맛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요는 김칫국물에 소금기가 너무 많음으로 자칫하다보면 염분의 과다섭취가 문제시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것은 위에 자극도 많이 줄 수 있음으로 특별히 권할만 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추억은 강렬하지만 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이런 식의 식생활을 즐겨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혹시 밥맛이 떨어졌을 때 옛날의 춘궁기를 생각하면서 김칫국에 밥을 한 덩어리 말아서
먹어보면 아주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음식을 만들어 먹다가 와이프에게 걸린 적도 있었다.
왜 좋은 김치를 놔두고 김치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느냐는 것이다.
궁상스럽기도 하고 김치 국물의 자극성으로 인하여 위에도 부담이 되는데 굳이 그런
식생활을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 와이프의 의견이다.
나도 거기까지는 충분히 공감을 해 준다.
하지만 아까운 김치 국물을 그냥 버리기에는 수챗구멍에게 미안한 감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반찬을 다 놔두고 굳이 김치 용기 밑바닥에 깔린 국물까지 먹어야 하냐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에 그런 장면을 바라보면 웰빙식이니 뭐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시엔 그렇게라도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삶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도 제대로 못 갖출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 궁핌속에서도 낭만이라는 것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을 잘 넘기게 했던 김칫국물에 밥 말아 먹었던 사례는 배가 부른 지금에도
잊지 못할 식생활의 추억으로 남는다.
혹 냉장고에 김치 용기가 들어 있다면 국물만 짜낸 다음 밥 몇 숟가락을 넣어서
비벼먹던 말아먹던 해보자.
그 어디서도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맛과 멋이 나오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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