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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생활 1년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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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생활 1년 째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백수 생활이 무슨 큰 벼슬이나 된다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백수는 결코 벼슬도 아니고 감투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이 개털 같은 신세로 전락된 곳이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자학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백수가 뭐 길래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의미 없는 세계로 그려지는가에
대해서 의아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백수는 백수를 맞이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세계이다.
과부의 마음은 과부가 알고 홀아비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고 그 세계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세상이라 보면 될 것이다.
여기서 백수란 나이가 차서 자신의 본업에서 퇴출돼 나온 사람에 한정하고자 한다.
젊은 날 실직이 되어 백수가 된 사람에게 진정한 백수라 이름 붙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젊은 날 실직은 개구리가 점프를 하기 위하여 몸을 한 스텝 뒤로 빼는 과정이라 보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백수로 진입하는 나이를 통상적으로 60살로 본다.
세간에서는 60이면 청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나이든 사람에게 절망을 하지
말라는 립서비스의 표현이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60이 되면 심리적으로 엄청난 위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예전 같으면 이 나이가 되면 대부분 저승에 가 있어야 하겠지만 지금은 의학이나 의식주의
발달로 인하여 점점 더 늦춰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은퇴할 나이가 되면 아무리 정신력이 젊은 사람도 본업의 세계에서는 배제를 받게 된다.
물론 자영업을 한다거나 의사나 변호사, 그리고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백수의 세계를 늦출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통상적으로 60세 전후에 다니던 직장이나 직업의 세계에서 벗어나 할 일 없는
사람으로 국한해서 보면 얼추 얼개가 잡히리라 본다.
어떤 세계이던 간에 처음엔 적응하기가 힘들게 돼 있다.
아무리 좋은 직장도 처음에 들어가면 서먹서먹하듯 백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그와
진배없다고 본다.
직장에 들어갈 때엔 희망이라도 있지만 백수의 세계에서는 그와 반대로 절망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차이라면 큰 차이라 본다.
백수의 세계는 인생의 내리바탕에서 용도가 폐기되었다는 시그널인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 내 자신이 합류했다고 생각하니 허무와 허망이 그대로 밀려온다.
마음만은 팔팔하나 몸은 노쇠하고 물리적 시간은 너무 멀리 온 것이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해 봐야 의미도 없고 할 곳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백수인생 1년을 지나고 나니 이제 정신이 조금은 드는 것 같다.
처음 백수의 세계로 떨어졌을 때 어떻게 남은 인생을 엮어가야 할는지에 대하여 막막하
였는데 이제는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방향설정이 잘 안 되고 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시간이나 축내는 듯 한 인생을 엮어가고 있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하고 시간을 축냈으면 축낸 만큼 뭔가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니까 애가 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남은 인생의 시계는 점점 더 빨리 가고 있다.
젊은 날에 열심히 일하고 난 다음 은퇴를 하고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서 말년을 멋있게 보내는
것이 꿈이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시간을 이용하여 젊은 날에 맘껏 할 수 없었던 여행도 하고,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 게 다 부질없는 일로
전락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뭣을 해도 재미가 없고 하고 싶은 욕망이나 충동이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요는 그런 긍정도 젊은 날에 긍정이지 나이를 먹고 나니 긍정 따위는 내 마음에 절실히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진장 많이 주어진 시간에다 그간 쌓아 놓은 풍부한 식견이나 경험을 얹져 놓으면 무엇을
해도 할 것 같은데 그게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보니 주변에서 퇴물로 인식하고 있는 시각이 더 크게 보인다.
물론 퇴물이 맞긴 맞다.
써먹을 데가 없으니 그게 퇴물이지 무엇이겠는가.
특히 남자 은퇴자들은 더더욱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써먹을 데가 없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사람을 죽을 때까지 관리해야 하는 비용과 신경쓰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주변에 눈치를 엄청나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더 절박하게 표현한다면 ‘삼식이’가 된다는 말이다.
막상 당해보면 ‘삼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업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서 힘도 들고 어색하지만 “밥은 스스로 알아서 챙겨 먹자.” 라는 자구책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옛날 같이 담뱃대만 물고 ‘어험!’만 외쳐도 대접받던 시대는 아예
물 건너 가버렸다.
은퇴하고 천덕꾸러기같은 인생만 안 살아도 살맛이 좀 더 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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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택균님의 댓글
박택균 작성일
100세를 넘게 살아가는 김형석 교수의 백세를 살아보니
60세부터 75세 까지의 시간이 인생에서 제일 좋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퇴직후 20년을 살아보니 60세 나이가 가장 청춘입니다.
조선생님은 글도 잘쓰니 문단에 등용 책도 쓰고 여행도 지금처럼 젊을때 먼외국부터 다니시고 인생을 즐기세요.
조규전50님의 댓글
조규전50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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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갑니다.
어떤 땐 부드럽게 또 어떤 땐 사정없이 훑고 감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 물리적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늘 자각하며 살아갑니다.
형님의 멘트를 보고나니 제가 주저리주저리 읊었던 넉두리의 존재가치가
살아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위안을 얻습니다.
나이를 먹은 사람의 마음에 식량은 과거에 차곡차곡 쌓았던 인생역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갑니다.
젊은 날에 형님과 같이 만났던 그 때가 그리워집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평생에서 가장 젊은 나이라고 하니 그걸 위안으로
삼아 살아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