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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 유배지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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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 유배지를 다녀오다.
강원도는 유난히 유배지가 많은 곳 중에 하나다.
그 유배지 중에서 압권은 역시 영월에 있는 청령포가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유배지가 있다는 것은 역사나 설화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우리 강릉도 그 유배지 중 하나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병무청 뒤에서 노암주공아파트로 내려가는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 고 저택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조선 영조때 홍국영이라는 사람이 유배생활을 2개월 하다가 요절한 곳도 있다.
그보다 더 리얼한 유배는 우리나라를 벗어난 경우도 있었다.
3.15 부정선거를 통하여 독재와 장기집권을 꿈꾸었던 이승*은 아예 한국 땅도 아닌 미국 하와이로
유배를 떠났던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기록으로 보았을 때 망명이라고 칭하지만 그 또한 백성들에게 쫓겨나 해외로 유배를 떠나서
객사했던 특이한 경우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유배지는 남다른 사연을 만들어낸다.
경상남도 남해에 가면 유배문화관이라고 있다.
거기도 유배지로 적격이었던 모양인데 수 많은 사람들이 유배를 온 것을 한 군데 집대성하여
기념관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강원도에서 유배지가 가장 잘 보존 된 곳 중에 하나가 인제에 있는 백담사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여기서 유배생활을 했던 전두*과 그의 처인 이순*가 머물렀던 곳에
흔적을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하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그 흔적을 모두 지웠다고 하는데 그 또한 아쉬움은 좀 남는
것 같다.
순수하게 관광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흔적 또한 훌륭한 볼거리가 되었을 터인데 없앴다고 하니
애잔한 마음도 들어간다.
백담사는 입구에서 그냥 적당히 걸어가다 보면 있는 절이 아니다.
입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도 10여분 이상을 가야지만 만날 수 있는 아주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절이다.
과거에는 걸어서 갈 수 도 없었는데 최근에는 일정 구간에 잔도와 데크를 만들어 놓아서 걸어서
가는 사람도 없지 않아 많이 보였다.
입구 주차장은 주차료 2천원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셔틀버스는 1인당 편도 2,500원씩 내야
탈 수 있었다.
전에는 거기까지 가는 도로가 시멘트를 대충 발라 놓은 터이라 엄청 덜컹거렸는데 이번에 갔을
때엔 아스팔트로 잘 깔아 놓아 승차감은 상대적으로 아주 좋았다.
좁고 주변이 험악한 1차선 산악도로를 셔틀버스는 요리조리 잘 피하면서 운전을 하는데 타고
가는 사람들은 아찔한 장면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백담사의 스토리의 주인공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때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몸을
바쳤던 만해 한용운이라 본다.
지금도 백담사에는 한용운의 문학작품과 함께 그의 궤적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문화관을
만들어 놓았다.
보통의 절 같은 경우 법당을 보고 요사채나 주변에 환경만 주마간산 식으로 보고 오게 되는데 이
절은 그래도 한용운과 깊게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맛 볼 수 있다.
바로 앞에 잠깐 언급했 듯 현대사에 많은 이야기를 남긴 전두*의 흔적도 같이 있었으면 명쾌한
대비가 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백담사 주차장에서 절까지 가는 과정에서 걸어서 간다는 것은 등산을 하지 않는 한 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거기서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요즘 같은 주말에는 몇 십 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하고많은 절을 다 놔두고 왜 이렇게 백담사에 열광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거기서 줄 서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답이 금세 나온다.
“전두*과 이순*의 흔적을 보기 위함이란다.”
백담사라는 절 그 자체는 어디고 간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백담사에 한 번 가보기 위하여 몇 십 분씩 줄을 서서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그 절에
어떤 사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만해 한용운 선사가 만들어 놓은 스토리를 보러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먼 미래를 본다면 모르겠으나 내심은 전두*의 스토리를 찾아서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백담사는 설악산 서편에 위치한 절로서 설악산에 영험한 기를 총합할 수 있는 위치에다 만들어
놓았다.
신라 진덕여왕 시절에 자장율사가 한계사라 명하고 지은 절인데 그 뒤 많은 부침을 거쳐서
지금에 백담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 절에 지리적인 특징으로는 절 앞에 흐르는 큰 개천과 같이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큰 물난리라도 나면 금세 절이 다 떠내려 갈 정도로 개천 가까이에 있는 절로 유명세가 더 해
졌는지도 모른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돌다리를 건널 때면 마치 속세에 있던 모든 허물을 벗어 던지고
불교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다리 옆을 보면 때묻지 않은 아주 깨끗한 돌과 청명하기 그지없는 맑은 물이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세상에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돌과 물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절에 또 다른 매력이랄까 특징이랄까, 언덕이 없이 평지에 모든 절간이 위치하고 있어서
다니기에 아주 편하다는 것이다.
물론 경사지에 있는 절처럼 시각적으로 입체적인 맛은 덜 나지만 평평한 곳에 위치한 만큼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여주에 있는 신륵사와 지형적으로 유사한 느낌도 많이 들어간다.
개천과 워낙 가깝다 보니까 그 개천 자체가 풍기는 풍광은 그 어느 절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장면이 많이 연출된다.
아치형 돌다리에서 위쪽과 아래쪽을 동시에 보면 뭔가 새로운 세상이 연결되는 듯 한 느낌도
강하게 받는다.
또한 여기에 온 사람들은 그렇게 맑고 깨끗한 돌을 가지고 불교의 냄새를 제대로 느끼기 위한
체험학습을 하게 된다.
절 앞쪽 개천변에 쌓아 놓은 무수한 돌탑이다.
제가 갔을 때 어떤 사람이 뾰족한 돌 하나를 거꾸로 세워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중심을 잘 잡아도 그 돌이 설 수 없는 형태였는데 현실에서는 바로 서 있었다.
달걀도 똑바로 세우기가 힘든데 형태도 비정형적인 돌을 그렇게 세웠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만 그런 생각을 가진 줄 알았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돌 앞에서 신기한 듯 바라보는
모습에서 보는 눈의 공통점은 다 있는 것 같았다.
자연과 사찰, 그리고 많은 스토리가 녹아있는 백담사는 언제 가 봐도 펑안하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특히 백담사 안에 있는 큰 야광나무가 하나 있다.
그 또한 그 절만 가지는 특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까짓 야광나무 하나가 뭣인데 한다면 뭣을 봐도 감흥이 안 오리라 본다.
혹시 백담사에 들리실 일 있으시면 필히 그 야광나무와 조우하시고 큰 복을 받아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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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심호섭님의 댓글
심호섭 작성일
재임기간 엄청 나라를 망가뜨린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문씨 아저씨지요, 그렇다면 다음엔 문씨에 대해서도 그 죄목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글 올려 주시구요, 아마, 전씨아저씨 보다 더 나쁜짓한 사람일걸요, 요즘 그 딸이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된 모습보니 가관이더군요.
그 추태를 보니 지난날 연구했던 '자질론'이 생각이 났어요. 그러구 MBTI가 궁금했구요, 진작 백담사 유배지로 갈 사람 또한 '문씨겠구요. 양산이 아니라, 백담사로 가야 할 사람이 양산에 있으니 많은 국민들이 속 답답할 겁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혼돈의 시대정황속에서도 초석을 세우시고 나라를 지켜온 전직 위대한 대통령 중 한분이니 후손으로 욕되게 하지 마십시다.
조규전50님의 댓글
조규전50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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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사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일은 없는 법이죠.
누구에게나 공과(功過)는 있다고 봅니다.
공보다 과가 많아서 귀양살이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봅니다.
귀양살이 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더 멋있는 인생을 구가한 윤선도, 정약용, 남구만
같은 분도 계시잖아요.
문재* 같은 사람이 범법을 저질렀다면 전에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이명*, 박근*와 같은
분들처럼 벌써부터 영어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서릿발 같은 현 검찰정권에서 법정 근처에도 가지 않은 분을 그렇게 폄훼하는 것은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승* 같은 분이 재직기간 중에 저지른 일을 보았을 때 위대하다기보다 조선시대에 선조임금
같은 향기가 더 나지 않나요.
그분은 독재와 장기집권을 획책하다가 만백성에게 쫓겨나 미국의 본토도 아닌 그야말로 우리로
말하면 변방에서 일생을 마치신 분이 아닌가요.
뉴라이트처럼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아전인수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어디가도
환영받지 못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심호섭님의 댓글
심호섭 작성일
모교 홈페이지는 매우 신선한 마당이오,그러니 자기만의 틀에 갇혀있는 이념해석은 쓸모짝없구요,
모두가 공감하는 장으로 만들어야겠구요,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거늘 나또한 70년대 먼 외지땅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대치하며 나라살리겠다고 목청을 높혔지요.
- 아전인수식 접근이라는 표현이 거슬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