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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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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성묘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지 글도 늙어 가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참 잘 써내려 가다가도 결국에는 우중충한 방향으로 글 흐름이 이어짐을 직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사고방식도 육체처럼 노화가 된다는 이야기처럼 인식된다.
늙어감이 글에서도 확연하게 보여지는 것을 막아 보려고 좀 젊은 표현을 하고 싶어도 결국에는
무겁고 우중충한 방향으로 흐를 땐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서 글도 늙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는 것 같다.
늙은 사람이 글을 써도 청춘시절에 쓴 못지않게 생기발랄하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이 늙었는데 글이라고 늙지 않겠는가.
오히려 늙은 사람의 글이 너무 젊게 비쳐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올 추석은 계절적으로 좀 빠른 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너무 더워서 추석의 맛이 한 참 덜 났던 경우가 아니었을까 한다.
한여름에 땡볕을 감내하고 알알이 익어가는 곡식을 첫 수확하여 조상께 제례를 올리는 추석의
중심점은 가을이 제대로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석이란 단어의 ‘추’자는 가을이라는 뜻이 있고 ‘석’자가 들어간 것은 저녁의 의미인데
보름달을 보자면 저녁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데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추석에 의미나 추억은 누구에게나 많이 있었으리라 본다.
대부분은 이 시점에 추억보다는 유년기에 맞이했던 추석이 더 진하게 뇌리에 박혀 있으리라 본다.
추억의 유형도 각양각색이겠지만 현재처럼 산업화가 되기 전 농경사회에서는 추석 근처에 일어나는
일들이 죄다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성묘가 아닐까 싶다.
성묘는 조상의 무덤을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는 과정이라 보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매장문화를 가진 경우에 특별하게 파생된 제례문화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보통 묘지는 산에다 모시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성묘를 하기 위해서는 개천을 건너 산을 올라야지만 갈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된다.
유년기엔 멋도 모르고 부모나 삼촌의 손을 잡고 성묘를 하러 가게 되었고, 철이 들면서 윗대가
했던 것을 자연스럽게 계승함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급격히 변하면서 조상의 산소에 성묘 가던 문화가 몇 백 년 만에 많이 바뀌게 되었다.
성묘대신 해외로 날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으로 가게 된 것이다.
조상을 모시러 이슬이 무상한 풀밭을 헤치면서 산중으로 가야할 것인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버터와 치즈가 있는 나라로 가야할 것인가에 대하여도 갈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 조상을 열심히 모셨던 중, 노년기에 처한 사람들도 가치판단에 혼란을 일으키는 세상에
온 것이다.
아무리 험악한 상황이 되어도 변함없이 조상모심이 일어나는 곳이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직까지는 우리사회가 과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펼쳐지는 곳이다.
추석이나 설 때에 가장 붐비는 곳 중에 하나가 우리 지역에서는 사천에 있는 청솔공원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조상을 모셔 놓은 사람이라면 명절 때 성묘 한 번 갔다 오자면 적어도 한나절쯤은 족히
걸려도 모자랄 정도이다.
오전에 혼잡할 것 같아서 오후에 시간을 잡고 가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더 북적거림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매장문화에서 화장 문화로 바뀌면서 달라진 성묘의 풍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거에는 산에 모셔 놓았던 조상이 이제는 납골당에 모셔진 것이다.
이 또한 세상변화의 한 단면이 아니겠는가.
조상을 위하는 마음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크게 없으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사이버 상에서 조상을 모시는 일이 전개되지 말라는 법 없을 것이다.
가을 이슬이 무상한 산으로 갈 필요도 없고 차 막힘의 끝이 없는 납골당으로 갈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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