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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초희(楚姬) - ‘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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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4-07-25 21:12 댓글 0건 조회 1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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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는 모두 다섯 개의 이름을 가졌다. 초희(楚姬), 옥혜(玉惠), 경번(景樊), 난설헌(蘭雪軒), 난설재(蘭雪齋)가 그것이다. 

 

그중 초희와 옥혜는 본명이고 경번은 자(/집안의 어른이나 스승이 붙여주는 부명(副名))며,  난설헌과 난설재는 호(). 이름은 대부분 부모가 지어 붙여주고, 호는 대부분 자신이 스스로 지어 자신에게 붙이는 이름으로 자()보다 더 허물없이 부를 수 있는 일종의 별호다. 여성에게는 이름이 따로 없어 성() 뒤에 씨()를 붙이던 당시의 풍습으로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사대부 집안의 여식으로 태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숱한 이름 중에서 왜 하필 초희(楚姬)였을까? 이름은 단순히 호칭을 넘어, 그 사람의 정체성과 운명을 담고 있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사주를 참고하여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 이름은 사주의 길, , , 복을 분석하고 음양의 조화를 고려하여 작명한다. 대부분 여기에 항렬(行列/돌림자)을 대입한다. 항렬을 먼저 고려하거나 사주를 먼저 고려하거나 하는 일은 작명자 주체의 몫이다. 

 

楚姬라는 이름에서 계집 자는 여자아이기에 그렇다 치고 (수풀 림)(바를 아)가 결합이 되어 만들어진 . 흔히 초나라 라고 읽지만 회초리라는 뜻을 지녔다. 그래서 '회초리 초'라고도 한다. 모두에서 썼듯 초희의 아버지 허엽은 당대의 석학이다. 당연히 아버지가 그녀의 이름을 지었을 것이고, 그것도 정처와 후처를 통해 얻은 소중하디 소중한 셋째딸이니 작명에 신중을 기해 짓고자 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景樊이다. 풍경 자와 울타리 을 썼다. 두 글자 모두 일반적으로 이름자에는 잘 쓰지 않는 글자다. 특히 자는 울타리라는 뜻 외에 새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후기 문신 임상원 (任相元, 1638~1697)의 저서 교거쇄편에 의하면 난설헌은 중국 송()나라의 이방(李昉)등 열두명이 엮은 설화집 태평광기(太平廣記)’를 신동이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어린 나이에 모두 외다시피 했는데 춘추전국시대 초장왕의 현명한 부인인 번희(樊姬)를 존경했기 때문에 스스로 를 경번(景樊)이라고 지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楚姬라는 이름 역시 음양오행을 고려하기 보다는 이 태평광기에 영향을 받아 초희 스스로 지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작명을 함에 있어 아버지 허엽은 초희의 그와 같은 일련의 행위를 허용했다고 볼수있다.  

 

또 하나의 이름 옥혜는 초희에 비한다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조선의 여성들이 쓰는 이름자로 소박하기까지 하다 이 이름에 대해서 언급된 자료는 없지만 어떻게 보면 옥혜는 본명이고 초희는 작품을 쓸 때를 염두에 두고 예능감을 살려 지은 또 하나의 이름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그녀의 다섯 이름 중 난설헌과 난설제 또한 초희가 어릴 때 글을 익히고 스스로 지은 호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의 호에 쓰여진 은 여성의 이름이나 別號로 쓰여지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의 접미사인 추녀 과 재계할 , 그런데 이 재계 할 는 신령, 부처 등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금기 행위 또는 상복(喪服)을 뜻한다. 아무리 별호인들 상복이나 상여집(곳집) 등을 뜻하는 재를 쓴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재계 할 보다는 이와 유사한 한자로 가지런할 가 옳은 표현이 아닐까 싶다. 또는 중 매우 유사한 두 제(, )에 대한 문자의 개념에 혼돈이 왔거나 개념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 발생한 실수일 수도 있다. 

 

조선시대의 건물은 격에 따라 殿-------(건물의 격) 등으로 나뉘는데 이름 뒤에 접미사로 붙이기에는 객관적으로 가지런할 가 더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아비 허엽의 호는 지금 생가가 있는 곳의 지명으로 쓰고 있는 草堂이다. 은 집이니 처마나 추녀를 뜻하는 , 섯가래를 의미하는 草堂의 집 의 의미와 합치된다 하겠다. 

 

蘭雪齋가 아닌가 하는 필자의 가설이 길어졌다. 경포대에 다섯개의 달이 온전하게 떠서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더하듯이 난설헌이 가진 다섯 가지 이름은 사적(史的)으로 모두 소중하다. 그중 다만 한자라도 오기가 없도록 보다 명확히 하여 그 의미를 모두가 알도록 하는 일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것은 더 고증을 거쳐야 할 일이고 필자의 주관적 견해임을 밝혀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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