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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묻 - 불멸의 사랑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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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4-06-09 15:10 댓글 0건 조회 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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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김부용.jpeg

<천안 광덕산에 소재한 운초 김부용의 묘>

 

누구보다도 부용을 아꼈고 부용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의지해 왔으니 그 슬픔을 어찌 한낱 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통곡하던 부용은 마음을 가다듬고 여류문인으로 돌아가 시로서 떠난 님을 위로한다.

 

風流氣槪湖山主 풍류와 기개는 호산의 주인이요

經術文章宰相材 경술과 문장은 재상 중 재목이었네

十五年來今日淚 15년 만에 오늘 흘리는 이 눈물

峨洋一斷復誰裁 끊어진 우리 인연 누가 다시 이어 줄까

 

都是非緣是夙緣 인연이 아닌 듯 맺어온 인연

旣緣何不趁衰前 인연이 되었지만 상복은 왜 못입는가.

夢猶說夢眞安在 꿈이라고 말한들 이것 또한 진실인가

生亦無生死固然 살아도 산 게 아니니 죽음 역시 이럴손가

 

水樹月明舟泛泛 밝은 달 비추는 숲 아래 배는 둥둥 떠 있고

山房酒宿鳥綿綿 술 익는 산방에 새는 지저귀는데

誰知燕子樓中淚 누각에서 흘리는 제비의 눈물을 누가 알리

酒遍庭花作杜鵑 마당가에 뿌려진 술은 두견화로 피어나리.

 

대감 김이양(金履陽; 1755~1845)은 고향 충청도 천안의 광덕산 자락에 기슭에 안장되었다.

 

부용은 대감이 죽자 평소 즐겨타던 거문고의 줄을 끊고 오로지 고인만을 그리워하며 16년을 더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녀는 <自寬 / 스스로 위로하며>라는 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鏡裏癯容物外身 / 거울 속 야윈 얼굴에 몸은 세상 밖에 있고

寒梅影子竹精神 / 매화의 그림자는 차고 정신은 대쪽 같이 맑은데

逢人不道人間事 / 사람을 대해도 인간의 도리를 말하지 않으니

便是人間無事人 / 나는 세상을 탈 없이 사는 사람인가.

 

부용은 임종이 다가오자 내가 죽거든 김 대감님이 묻힌 천안 광덕산 기슭에 묻어주오.”라는 유연을 남겼다. 당시의 법도 상 소실은 같은 묘역에 묻히지는 못함을 부용 자신이 알기에 대감이 묻힌 곳과 가까운 광덕산 기슭에 묻히기를 원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부용은 당대의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신분의 귀천을 뛰어넘어 한 여성으로서 차원 높은 문학세계와 해방구를 지향했다. 늘 공손함을 견지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당돌하다 못해 발칙하기까지 했고 몸은 가녀렸으나 호방했으며 눈빛은 부드러웠으나 시문은 예리했던 여류시인 운초(雲楚) 김부용. 그녀의 유언에 따라 대감의 유택과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 홀로 쓸쓸히 잠들었다. 또 한 당시 사람들은 그 절개를 기려 그의 묘를 초당마마의 묘'라고 불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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