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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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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2-08-03 06:41 댓글 0건 조회 2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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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학

 

 

예전, 농공고에 다닐 때 샛길로 인생항로를 틀다가 학교생활이 제대로 안된 친구들이 기억난다.

학교라는 곳은 생각보다 많은 규제가 따르는 공간이다.

제시간에 학교에 가야되고 노는 시간과 수업시간이 엄격히 구분되어지며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 

귀가를 할 수 있다.

옷이나 신발도 아무것이나 맘대로 입거나 신을 수 없다.

지정해 준 것만 입거나 신고 등하교를 해야 한다.

머리카락 길이도 지정되고 치마길이도 지정되어 있어서 그 범주에 넘으면 규제를 받게 된다.

수업시간에도 내 맘대로 공부를 할 수 없다.

선생님이 리드하는 방식으로 적응해야지만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규제조항을 따르지 않으면 제제가 가해지는 곳이 학교이다.

자유분방하거나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다니기에는 엄청나게 힘든 곳이 바로 학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교칙을 어기면서 멋대로 행동하는 학생들에게 제제가 가해지게 돼 있다.

예전에는 이런 제제의 유형이 비교적 간단하였다.

근신, 유기정학, 무기정학, 퇴학 정도의 급으로 나뉘어졌었다.

지금은 학폭위에서 서면사과, 접촉금지, 보복행위 금지교내외 봉사활동, 학생과 학부모의 

관련기관에서 교육, 출석정지, 학급교체강제전학, 퇴학으로 아주 세세하게 설정되어져 있다.

 

 

시대별로 학교생활에서 교칙을 어기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준 학생들에게 처벌을 주는 스타일은 

다르게 변하는 것 같다.

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학교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처벌을 받았던 사람들의 애환을 들여다 볼 수 

없을 것이다.

처벌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만한 원초적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고 그런 처벌을 받고 싶어 받았던 

학생들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처벌에 대한 불만 또한 만만찮게 크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대상이 된 학생이나 학부모나 한마디로 억울하다는게 중론이다.

 

 

학교생활에서 샛길로 간다는 것은 뭔가 자신의 의식 속에 불평불만, 반항인내심 결여, 불같은

 성질을 이기지 못함으로 발생된다고 본다.

이런 것을 잘 제어할 수 만 있다면 학교생활이건 사회생활이건 모두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학교에서 끊임없는 관심과 상담, 격려, 칭찬 등을 통하여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공 맹자나 소크라테스, 페스탈로치가 와서 가르친다 해도 샛길로 가는 아이들을 제어한다는

 것은 어려우리라 본다.

부모도 선생도 경찰이 나서도 안되는 게 아이들의 엉뚱한 행동을 제 길로 제어하는 일이라 본다.

옛날 같으면 매를 통하여 다스렸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보니 학교에서 샛길로 가는 아이

들에게 제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말썽피우는 아이들이 제 정신이 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심을 하고 있다.

된 맛을 못 본 아이들이라 말썽의 결과가 자신의 인생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경험해 봐야 아는 

경우일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세월이 흘렀을 때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손해가 눈덩이처럼 나야 각성을 한다.

바늘 도둑 소도둑 되듯, 소소한 잘못이 쌓이고 쌓여 결과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된 후에 큰 

처벌을 받고서야 제정신이 드는 경우이다.

아니면 타인을 잘못 패서 많은 병원비라던가 위자료를 물어주었을 시 경제적 손해가 남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거나 법원에 들락날락 하게 된다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습관이라 좀해서 고치기 어렵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험악한 욕을 하고 물건을 팽개치고 남을 때리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것이 이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발동된다는 데서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여 발생되는 일이라 했을 때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으리라 본다.

이렇게 좋지 못한 성질이 습관화되어 시도 때도 없이 학교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의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다.

천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속담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

 

 

그래도 학교생활이 개판인 아이들이 있다.

3년 내내 말썽을 피우다 퇴학을 맞거나 억지로 졸업을 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선생님들의 가슴속에 대못을 박고 친구들에게는 학습방해라는 엄청난 손실을

 주게 되는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개천물을 흐리듯 그런 학생 한 두 명이 학교의 분위기를 좋지 못한

 방향으로 가져가면서 수많은 선의에 피해자를 만드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결국 자신 망가지고 타인까지 망가뜨리는 23중의 피해자를 만드는 경우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이 또한 명쾌한 해결책이 없다는데서 자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는 학생들 이면에는 힘들었던 가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과 상담을 해 보면 대다수의 경우가 가정에 불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말썽 피는 아이가 잘못해서 부모를 학교에 오시라 하면 그 부모 중 일부는 자식보다 더 

불같이 학교와 선생을 비난하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보게 된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하지만 샛길로 가면서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는 아무리 미화를 해도 수용하기 어려운 처사라 본다.

부모의 업보든 정신적인 질병이건 자신의 불같은 성격이던 간에 고치지 않으면 주변에 많은 사람

들이 힘들고 피곤해 지는 것은 불 보듯 뻔 한 사실일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학교에서 말썽을 계속 피운다는 것은 피울만한 여력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퇴학을 당하기 전까지는 학교를 우습게보고 타인이야 죽던 말든 자신의 일탈된 생각과 행동을 

멋대로 행하게 된다.

아예 그런 행동이 학교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최후의 카드인 퇴학처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퇴학을 당해봐야 학교가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보살펴 주려고 애를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퇴학 후에 자신의 멋대로 된 학교생활을 후회해 봐야 때는 늦은 것이다.

결국 큰 손해를 보면 후회를 하게 될 것이면 그로 인하여 개과천선하는 경우가 생길 수 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봐야 된 맛을 아는 사람을 우둔하거나 바보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설치고 나댈 때는 우쭐한 심정에서 그럴지 모르지만 주변에서는 모두가 슬슬 피해 다닐 

것이다.

개중에는 그런 아이 옆에 붙어서 좋지 못한 행동이 나올 때 마다 박수쳐 주면서 장단을 맞추어

 주는 아주 나쁜 친구들도 있다.

그런 친구들도 나이를 먹으면 지난날의 자신에 행동이 그르쳤다는 것을 인식하리라 본다.

철들자 노망이 현실화 돼 봐야 정신이 드는 것 또한 아둔하거나 바보스럽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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