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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서울 갔다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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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2-06-16 06:30 댓글 1건 조회 1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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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놈, 서울 갔다 오다.

 

 

오랜만에 차를 끌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서울에 갔다 왔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가 궂어서 다녀오기에는 썩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서울쪽이 흐리기만 한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간헐적으로 비가 오는 바람에 이동하는데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차를 끌고 다닐 때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도 엄청 많이 눈에 띈다.

특히 경기와 서울지방에 달라진 모습들이 확연이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와 같이 농업을 전공한 경우에 우선 보이는 게 농사관련 전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다.

 

경기도 초입에 들어가면 맨먼저 여주와 마주치게 된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지르는 섬강을 지나자 그렇게 험악한 산들이 잔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쪽에서 산이라고 하는 지목은 강원도에 오면 들판을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이 야트막하게 보인다.

그 산자락 사이에는 경기미를 생산하는 논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옛날 조선시대에 진상미로 올려졌던 여주 쌀과 이천 쌀이 생산되는 곳이다.

같은 논에서 재배한 쌀도 강원도산과 경기도산이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될 수 도 있다.

 

어제 같은 경우, 경기도에 들어서면서 야트막한 산허리도 사정없이 잘려나가는 장면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개발이라는 명목하게 야산을 파뒹겨 집이나 공장을 짓는 장면으로 보여진다.

서울에 점점 가까워지자 농토는 점점 더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건물을 지어대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을 봤을 때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어간다.

결국 좁은 땅 덩어리에 인간이 너무 많이 복작거리면서 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경부선과 만나는 신갈 쪽을 지나가자 이때부터는 농토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높은 건물 숲만 보이기 시작하였다.

과거에는 신갈 정도면 중간 중간 정도에 맨땅도 보였었는데 이제는 그런 땅 자체를 구경할 수 없을 정도가 돼 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촌에 살던 사람들이 서울로 서울로 이동을 하면서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사람은 낳아서 한양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에도 그런 이야기는 귀에 떡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다 남의 일처럼 느끼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야지만 삶에 보람과 가치, 그리고 활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촌에서 산다는 것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유는 간단한 것 같다.

본데가 없으니 물정 자체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미디어가 촌놈이나 서울놈이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덕분에 큰 차이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간다.

그것마저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돼 버린다면 촌놈은 영원한 촌놈이 될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되다.

 

버스 기사가 서울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갈 목적지를 스스로 찾아가야 할 상황이 전개되었다.

저도 왕년에 서울 생활을 좀 해 봤기에 아주 생소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기서 멀어진지 한 

참 된지라 촌티를 벗어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서울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방법 중에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지하철과 버스가 아닌가 싶다.

목적지가 역세권이라면 지하철을 타는 것이 찾기가 좀 수월하다고 생각된다.

 

어제의 목적지는 청계산 입구에 있는 모 호텔 컨벤션 장이었다.

양재동화훼센터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으로 알고 있었기에 양재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갈아탄 다음 

윤봉길기념관을 거쳐 그 다음 역으로 가면 되는 코스였다.

그런데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지하철을 잘 못 타는 바람에 중간에서 다시 원대복귀 하는 대형 사고가

 유발되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이미 현실에서 벌어져 버린 것이다.

나이를 먹은 탓인가, 아니면 뇌가 노화되어 판단력이 흐트러져버려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미처 적응을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아무리 한탄을 해 본들 내 자신의 일임으로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처지도 안 되고 보니 그저 한심하고 

딱할 뿐이었다.

 

아니 그 전에 지하철 승차권을 구입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매표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매표소는 보이질 않는다.

대신에 자동 매표 기계가 보였다.

그런데 그 기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디에 어떻게 써 먹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눈도 침침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만상을 찡그려가면서 작동법을 알려 해도 잘 

보이지 않아서 사용할 발법을 알 수 없었다.

만든 사람도 있는데 그걸 이용할 주변머리가 없다는게 그저 딱할 뿐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에는 너무나 창피스러운 것 같아서 아예 단념을 하고 그냥 신용카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승차를 위한 출입구에 신용카드를 들이대자 센서가 작동하면서 파란불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해서 1차 관문은 무사히 통과했다.

이 얼마나 촌스러운 이야기인가.

어찌하였던 촌에 살다보니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촌놈이니까 어쩔 수 없겠거니 하는 것은 내 자신의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반성할 처지도 아니라 본다.

그냥 완전한 촌놈이 돼 버린 것이다.

 

아침 출근 시간대가 좀 지났는지라 지하철 안은 좀 덜 붐볐다.

마침 자리가 하나 나길래 얼른 가서 앉았다.

그런데 그 자리가 다른 자리 색깔과 다르다는 것을 앉고 난 다음에 알았다.

한 정거장만 가다가 내리는 터이라 일어나서 보니 노약자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물리적 나이로 봤을 때에는 거기에 앉아도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처지는 아니라 본다.

그래도 그 자리가 노약자석이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안 앉았을 터인데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가 

비었다고 털썩 앉은 내 자신이 약간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환갑을 지나다 보니 내 자신도 자연스럽게 노약자의 세계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실히 들어갔다.

모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서울에 갔다 오면서 확실하게 인식된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누가 뭐라해도 나는 촌놈이라는 사실, 또 하나는 싫던 좋던 노약자의 반열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슬픈 일도 자괴감을 느낄 일도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 그럴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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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모님의 댓글

강신모 작성일

선배님 덕분에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모 회사시절 본사 서울 10년을 근무 해봤지만
그 당시 젋음때는 한양이 좋더구만요
지금은 고향이 쵝오로 좋은듯해요 ㅎ
서울 당겨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선배 교장선생님 은제 함 쓴소주 한잔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