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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느니 개를 키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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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3-04-03 08:20 댓글 0건 조회 7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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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키우느니 개를 키우겠다.

 

 

예나 지금이나 청춘남녀들의 가슴앓이 중 하나는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 종족보전을 해야 한다는 원초적 논리에 빗댄다면 당연히 결혼을 하는 것으로 귀착 될 

것이고, 내가 그런 대열에 끼지 않아도 넘쳐나는 것이 인간이라 생각하면 그런 논리도

힘을 잃으리라 본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결혼이 굳이 필요충분 조건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전처럼 농경사회에서 결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덕목이었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결혼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농경문화에서 결혼은 곧 아이의 출산이고 이 아이가 집안 노동력의 근간이자 자신들의 노후를

 책임져 줄 보험의 역할을 했었다고 본다.

아이가 없으면 아무 꼴도 안 되는 시대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시대와 사회가 변하면서 이런 풍속도는 급격하게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그것도 남자 아이면 더 좋았던 시절에서 그와 역행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전환된 것이다.

아예 결혼을 안 하거나,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최소한으로 한정하면서 

그것도 여아선호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서 출산장려책을 아무리 강구한다 하여도 그 정책이 먹혀 들어갈 

리가 없는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하여 별 감흥을 진하게 받지 않는 것일까?

상당히 어렵고도 포괄적인 질문일지 모른다.

여기에 대하여 명쾌한 답을 내리는 것은 수월치 않으리라 본다.

본질적으로 결혼의 필요성을 예전에 우리 선조들처럼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살아가는데 그렇게 문제가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무겁게 생각하는 요인 중 하나가 속박성이 아닐까 싶다.

나 혼자 자유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인데 굳이 군더더기 같은 배우자를 맞이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선택의 기준이 너무 다양하게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나이, 외모, 건강, 학벌, 직장, 종교, 집안내력, 경제력, 비전, 가치관 같은 것을 죄다 맞춰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두 가지도 맞추기 어려운데 이렇게 많은 변수를 대입시켜 그 조건을 맞춘다는 것은 신의 

경지에서도 어려울 것이다.

사회가 다양한 방향으로 분화가 되다보니 많은 영역의 조건을 충족시켜 줄 대상자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렵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게다가 결혼이란 자체가 가정을 꾸리는데도 있지만 생명체 본성인 종족보전의 본능도 있다고 

본다.

본성을 떠나서 자식이 있음으로 노후도 그들에게서 보장을 받는 시절이 있었다.

자식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큰 보험 하나를 드는 것과 같은 의미도 있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의 수급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자식이 곧 노동력 공급원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유교적인 사상에 젖어 있었던 시절에는 대를 잇기 위한 방편으로 자식을 더 간절히 요구했었다.

특히 가문을 잇는 계보가 남자로 이루어졌기에 남아선호사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컸었다고 본다.

이렇듯 자식이 없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렇게 중요시되던 자식도 세월과 

사회가 변하면서 퇴색이 되어가고 있다.

 

종족보전도 내가 하지 않아도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못하면 중국인, 그들이 못하면 인도나 동남아, 더 나아가 아프리카에서는 아직까지도 

자식 많이 낳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애 많이 낳아 주는 곳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노후 보장도 자식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해 주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돈을 벌어 놓으면 그 돈을 가지고 더 멋있는 노후를 구가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본다.

농경사회와 같이 많은 노동력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굳이 인간이 손발이 마르고 닳도록 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기계나 로봇이 그 역할을 다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대를 잇는 발판은 의미가 점점 더 퇴색되어 가고 있다.

아프리카 출신 며느리, 유럽출신의 사위를 맞이하는 세상인데 대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단일민족에서나 조금의 의미가 있는 대 잇기 문화도 이제는 구시대 유물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다.

 

설사, 애를 낳았다 하더라도 키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공부시키는 것, 결혼과 출산

그리고 사회생활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손과 돈이 안 가는 곳이 없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애만 낳아 놓으면 저절로 크는 듯 한 느낌이 들어갔지만 그런 세상은 한 참 

전에 이미 지나가버렸다.

공부를 시키기 위하여 그 부모는 몇 푼 벌어서 올인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아이가 아무리 잘 되어도 투자한 원금을 회수한다는 것은 기대난망이라 본다.

남아라면 군대라는 고비도 넘겨 주어야 하고 결혼도 시키고 출산도 시켜야 하는데 이런 

것 자체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럴 바에야 강아지나 키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온 것이다.

강아지도 물론 손끝이 많이 가지만 인간보다야 훨씬 더 수월하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항도 하지 않고 주인에게 좀해서 달려들지도 않는다.

가끔가다가 아프기는 하지만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 주다가 안 되면 안락사라도 

시키면 끝나게 된다.

인간에 비해서 관리하기엔 훨씬 덜 힘들고 골도 덜 아프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는 행복은 아이보다 강아지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 품 안에는 아이대신 강아지가, 끌고 다니는 유모차엔 아기 대신 애완견이 

담겨져 굴러가는 세상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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