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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85 –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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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1-04-07 00:47 댓글 0건 조회 6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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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오고, 어느 날 부터 화르르 화르르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시골 마을의 돌담 안 마당에는 앵두꽃이 피고, 아파트 울타리에는 개나리가 만발하는가 싶더니 양지녘 화단에는 올해 처음 튤립이 고고하게 꽃망울을 맺었다. 

강변을 따라 산책길에는 벚꽃이 지천이고 이산 저산 골짝마다 산벚꽃이 화사하다. 뿐만인가. 캠퍼스 낡은 연구실 창 앞에 핀 자목련이 올 따라 유난히 눈길을 끈다. 꽃들의 유혹에 가끔씩 창밖을 내다보는 젊은이들의 가슴이 설레여 올 것이다. 

나무들은 겨우내 땅속까지 얼어붙고 뿌리까지 흔드는 혹독한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오면 격정처럼 꽃들을 토해낸다. 지난해 제 온몸을 던져 꽃을 피웠던 여러해살이 식물들은 언 땅에 뿌리를 숨기고 있다가 봄이면 영락없이 하늘을 향해 몸을 열어 저마다의 모양과 저마다의 색으로 꽃을 피운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잎을 피운 다음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도 있다. 어떤 것이 순리인지 혼돈도 잠시, 막 피어나 가지를 장식하는 연두의 잎들과 꽃들은 올해도 찬란하고 눈부시다. 봄마다 꽃이 피지만 우리는 꽃들이 피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봄이면 늘 그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묻거나 따질 사유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꽃들은 때가 되면 의당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제모습대로 피어나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 들인다. 

사람들은 꽃의 생을 곧잘 사람의 인생에 비유를 한다. 순간이동이 가능한 사람과 제자리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며 꽃을 피워야 하는 식물은 신이 준 역할이나 그 생체구성은 다르지만 생애의 과정은 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 생의 패턴이 있기에 사람은 사람대로 꽃은 꽃대로 저마다 사명을 다하며 의미있는 생을 살아간다. 

봄이 오기 무섭게 화들짝 피는 꽃들은 시샘하듯 바람이 불어 훨훨 날려도 아름답고 뚝 뚝 떨어져 누우면 코끝이 시큼하도록 애잔하다. 초저녁 상현달이 뜨듯 희디흰 목련이 피고 새벽이면 별이 사라지듯 시나브로 벚꽃이 지면서 봄날이 간다.

곧 가지마다 연두색 잎들이 치열하게 피어나면서 오는 여름은 푸르며 향기로울 것이다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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