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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81 - 『萬行 漫行 卍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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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1-01-21 10:27 댓글 4건 조회 7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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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해가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갔다. 그러다가보니 새해역시 오는 줄 모르고 맞이했다. 그나마 기분이라도 내려고 연두시(年頭詩) 한 편을 써놓고 보니 시답잖기도 하고 답잖기도 하다.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올렸지만 읽는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누구하나 댓글 한조각도 달지 않는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했던가 아니면 모두들 피난살이에 지쳐 짧은 인사조차도 포기하도록 귀차니즘에 빠져 들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매년 11일은 새로운 각오로 시작을 한다. 새해는 이런 저런 일을 해야지 하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마음과 약속을 한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동해안에서 새해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행사도 금지되고 분위기가 그렇다가 보니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간단한 의식도 사라졌다. 새해면 의례히 찾아오는 아들 며느리의 방문도 자제를 하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히면서 손주들의 재롱도 볼 수 없으니 참 어색한 한해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들 막무가내로 솟아오르는 해를 막을 재간도 없으니 마스크를 여며 쓰고라도 기꺼이 맞이해야 할 일이여서 아내가 차려놓은 떡국을 꾸역 꾸역 먹고 가까운 산에 오른다. 그날따라 정산부근에서 핸드폰의 만보기 앱은 팡파레와 함께 8,000km를 걸었다는 메시지를 띄워줬다.

하루 만보씩 걷기로 결심을 한 것은 5년 전 새해였다. 운동시간과 일이 겹칠 때는 더러 건너뛰기도 했지만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하루 4 ~ 10km씩 꾸준히 걸은 결과다. 얼추 계산을 해보니 5년간 두달에 한번씩 춘천과 강릉을 걸어서 왕복을 한 셈이다. 걷고 또 걸으면서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 동안 나에게 어떤 일들과 새로운 변화가 있었던가  

어느덧 2,000km만 더 걸으면 10,000km(萬行)를 돌파하게 된다. 그런들 득도를 할 것도 아닐 것이니 이제부터는 수치적 목표를 의식하고 걷는 길이 아니라 소풍하듯 휘적휘적 천지사방을 느긋이 바라보며 걷는 만행(漫行)의 길이였으면 한다. 또한 그 길이 비우되 허무가 아니며, 채우되 모든 이들에게 이로운 길이기를, 세속인이 함부로 쓸 문자는 아니되 성찰과 자아를 재발견하는 만행(卍行)의 길이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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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yki님의 댓글

kimyki 작성일

새해라는 의미에 새롭고 신선한  무게를 주기 위해 나는 자신과의 약속을 수없이 남발했던 것 같습니다.
후배님의 8,000km 보행을 우선하여 축하드립니다.
이건 거리의 길이에 앞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의지가 이룩한 가치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의 평심이 작심 3일인데 5년이란 세월과 함께 지켜온 그 의지에 대한 가치를 함부로 가늠할 순 없을 것입니다.
만행(萬行)으로 만행(漫行) 하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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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정도 보행은 누구나 하는 걸음입니다.
앱이 기록을 관리를 해 주고 저는 그것을 자랑질 하듯 글 소재로 삼았을 뿐입니다. 
다만 사색과 건강에는 많은 도움이 된듯 합니다.
걷는 순간 만큼은 참으로 개차반이 철들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새해도 그저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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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에이포 수필가님!
대단합니다.
두 달에 한 번씩 춘천에서 강릉을 왕복하는 거리를 걸었다니.......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라고 자문하는 작가님은 보통사람은 느낄 수 없는,
이미 仙의 경지에 이르럿는 것 같습니다.
10,000킬로미터도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 봅니다.
부부가 같이 늘 건강하시고, 아름다운 노후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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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글의 소재가 되다가 보니 정리되어 기록되었을 뿐
알게 모르게 누구나 하는 일이요. 
仙은 커녕 아직도 길은 멀기만 하오. 
작가님의 가정에도 새해 평온이 가득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