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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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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단파파 작성일 2017-10-28 14:40 댓글 4건 조회 6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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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노인정엔 80대 할머니들 5~6명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모인다.

낮 시간은 거의 노인정에서 보낸다.

물론 간식거리도 있고 주방시설이 있어 한 끼 점심도 해결할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심심풀이를 위해 나온다.

가끔씩 들여다보면

항상 자리 변화 없이 그 자리를 자기 자리로 고수하는 할머니(88세) 한 분이 있다.

그 할머니가 그중에서 왕초(?) 대접을 받는다.

나이는 두세 번째 윗선이지만 모두들 그 할머니의 지휘를 따른다.

그런데 최근에 불협화음이 새어 나왔다.

앞뒷집에 살면서 찰떡같이 붙어 다니던 할머니 한 분이

토라져서 요즘 안 나온다는 것.

이유인즉 바둑알 따먹기 고스톱 치는데 왕초 할머니가 지나치게 간섭이 많다는 것.

자기는 고스톱 한 번도 치지 않으면서 남의 훈수는 물론 계산까지 해

이래라저래라.. 홧김에 판을 엎었단다.

또 왕초 할머니가 잘 쓰는 말~

"대서에 가야겠구먼~"이 지겹단다.


무슨 말인가?

여기서 대서란 대서방(代書房)→법무사사무실을 말한다.

이 이야기의 스토리가 있단다.

왕초 할머니가 아직 새댁일 때 광목 상포계(喪布契)를 했는데 첫 번 태워줄 때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두 번째 의견 충돌이 생겼단다.

현물 대신 현금으로 태워주는 데서 의견 대립이 생겼다.

처음 탄 사람은 당시 광목 값으로 10만 원을 태웠는데 두 번째는 그때 시세로 계산

12만 원을 태워줘야 한다 아니다 처음처럼 10만 원만 태워야 한다 하고

의견 대립이 서로 팽팽해져 나온 묘안이

"그럼 우리 대서(代書房)에 가 물어보자."였단다.

그래서 그때-시내버스도 없던 시절-25리(10km)를 걸어서 찾은 곳이 시청 앞 어느 대서방..

그 후로부터 왕초 할머니의 레퍼토리가 된

"대서에 가야겠구먼~"이 되었단다.

할머니들도 참 귀여울 때가 있다.ㅎ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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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양님의 댓글

세양 작성일

왕초할머니는 이니 기득권 세력이라 물러나지 않을 것이니
둘째 할머니가 화가 나셨네.
젊은이들 늙은이 말씀을 잔소리로 귀찮아 하는 일은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라서
영국 고고학자가 이집트 피라미트를 발굴하다가 벽에 낙서가 있기에 해석하니
"요사이 젊은이들 말을 안들어" 라고 했다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대간 문제는
같은 것, 늙어서 귀가 멍멍하고 눈이 침침함은 그렇게 지내라는 하늘의 뜻인데
그것이 잘 안되거든. 그 노인정 代書에 가야겠구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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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왕초할머니도 고희가 되면 좀더 완숙해 지지않을까요
인생을 제대로 파악하기엔 이순 또한 너무 어린 나이지요. ㅎㅎ
사족없이 깔끔한 문장이 정말 맛깔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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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선배님의 등단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잘 풀어 놓으시면서 왜 진작 글를 안올리셨는지...
가끔씩이라도 선배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기 원합니다.
글 안올리시면 저 시청앞 대서방에 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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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사소한 이웃 이야기가 곧 내 삶의 원천입니다.
씨시하고 답답한 일 생기면 언제라도 
씨~익 한 번 웃어봅시다.
"대서에 가야겠구먼~"  떠올리며..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