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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이야기(72) .. 충무공 이순신 진중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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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世 讓
작성일 2016-04-28 08:34
댓글 0건
조회 1,597회
본문
1545년 오늘,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이 태어난 날이라 한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해(1945)의 400년전에 일본(倭人)들과 6년간
싸우다 倭人의 소총에 죽은 李舜臣장군은 오로지 애국과 충성만을 신조로 살
면서도 한양(서울) 문신(文臣)들의 모함으로 백의종군등 치욕을 당하면서도
오로지 전쟁의 승리만을 위한 자기몫을 다 한 장군으로 기록되고 있다.
전쟁을 총괄해야할 임금(宣祖)은 북으로 피란가고 세자(世子)도 위태롭다는
소식을 들으니 남해안의 일본해군을 막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진중시
(陳中詩)를 짓는다.
天步西門遠 東宮北地危 [천보서문원 동궁북지위] 임금님은 서문으로 나가고
세자는 북쪽에서 위태롭다네
孤臣憂國日 壯士樹勳時 [고신우국일 장사수훈시] 외로운 신하는 나라를 걱정하고
장사는 공을 세울 때가 되었네.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주네.
讐夷如盡滅 雖死不爲辭 [수이여진멸 수사불위사] 원수를 모두 멸할 수만 있다면
죽는다 하들 사양하지 않겠네.
문시들은 편안하게 생활하며 시문(詩文)을 익히고 詩를 짓지만, 장수들은 무예를
익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장(戰場)을 헤매면서 틈틈히 글을 익혀 詩를 짓는다.
李舜臣의 진중음(陳中吟)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는 유명한 구절로 평가받고
있다. 임시정부 수반을 한 김구(金九)가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들려 방명록에 남긴
휘호도 李舜臣의 이 글귀를 적었다고 한다. (그 글씨로 비석을 세웠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해(1945)의 400년전에 일본(倭人)들과 6년간
싸우다 倭人의 소총에 죽은 李舜臣장군은 오로지 애국과 충성만을 신조로 살
면서도 한양(서울) 문신(文臣)들의 모함으로 백의종군등 치욕을 당하면서도
오로지 전쟁의 승리만을 위한 자기몫을 다 한 장군으로 기록되고 있다.
전쟁을 총괄해야할 임금(宣祖)은 북으로 피란가고 세자(世子)도 위태롭다는
소식을 들으니 남해안의 일본해군을 막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진중시
(陳中詩)를 짓는다.
天步西門遠 東宮北地危 [천보서문원 동궁북지위] 임금님은 서문으로 나가고
세자는 북쪽에서 위태롭다네
孤臣憂國日 壯士樹勳時 [고신우국일 장사수훈시] 외로운 신하는 나라를 걱정하고
장사는 공을 세울 때가 되었네.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주네.
讐夷如盡滅 雖死不爲辭 [수이여진멸 수사불위사] 원수를 모두 멸할 수만 있다면
죽는다 하들 사양하지 않겠네.
문시들은 편안하게 생활하며 시문(詩文)을 익히고 詩를 짓지만, 장수들은 무예를
익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장(戰場)을 헤매면서 틈틈히 글을 익혀 詩를 짓는다.
李舜臣의 진중음(陳中吟)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는 유명한 구절로 평가받고
있다. 임시정부 수반을 한 김구(金九)가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들려 방명록에 남긴
휘호도 李舜臣의 이 글귀를 적었다고 한다. (그 글씨로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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