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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53 - “이 여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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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16-09-28 21:37 댓글 2건 조회 6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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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내, 마누라, 집사람, 와이프, 애들엄마, 며느리, 동서, 형수라는 숱한 명사를 짊어지고 살아온 지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방랑기에 돈키호테 같이 일만 저지르고 다니는 4차원 남편과 함께 사느라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트렌디한 진보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 집에서 하는 짓은 유교적 사고와 관습에 찌든 가부장적 삶을 사는 남편입니다. 때로는 모시고 때로는 데리고 아들 둘을 포함해 세 식솔을 거두는 일이 쉬웠을 리 없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성난 살쾡이처럼 되어버린 아내. 일을 그만 둔 후 쉼표를 찍으면서 어느새 가을 문턱에 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던 걸까요? 아전인수식으로 생각한다면 이번에 자발적 리콜을 했다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아내와 아내의 친구들도 지금쯤 룰루랄라 신바람이 났을 것입니다. 마누라 시켜먹는 재미에 사는 남편이 옆에 없는 것만도 눈이 번쩍 뜨일 일인데 마흔 하고도 두끼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전망 좋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미식가인양 밥을 먹고, 햇살 눈부신 노천온천에서 고상하게 목욕을 즐기며, 쟈스민향기 그윽한 이부자리를 덥고 잠을 청할 것입니다.

인천공항에서 이제 출발한다는 카톡을 휙- 하니 보낸 이후 지금까지 여행 잘 하고 있느니 어쩌니 지금껏 소식 한통 없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와이파이 찾아다니다가 여행분위기 망치니 로밍도 하지 말고 카톡 같은 것 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습니다. 주변머리 없는 이 마누라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소화를 시켰는지 아니면 출발할 때 말한 대로 현지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파란 눈의 이국적인 남자에라도 빠졌는지 아무튼 현재까지 상황이 이렇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다면 삶에 찌든 영혼을 뉴질랜드 북섬의 빙하 녹은 맑고 신선한 물로 말끔히 씻어내고 순한 양이 되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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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슬슬 준비 하셔야겠네요.
버선발로 마중할~
그리고
유치하지만 대중가요 한 구절 외시구요.

"당신없인 못살아~"
귓속말로 하세요.
그래야
앞으로 30년이 행복할 거예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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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님의 댓글

바람소리 작성일

어둠이 깔린 창밖을 바라다보며 홀로 아리랑을 읊조리고 있는 후배님의 외로운 심상을 엿보고 있답니다. ㅎㅎ
지금쯤 그럴만한 시간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