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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라면과 너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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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3-01 20:59 댓글 0건 조회 5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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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라면과 너 라면



   우리가 즐겨먹는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우스갯소리로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라면이 무엇일까요?”가 아닐까 싶다. 우문의 답은 바다가 육지라면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런 논리라면 그 보다 더 큰 라면도 부지기수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라면이라는 접미사가 가지는 확장성이랄까 추상성이랄까 이런 뉘앙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뒤에 라면을 붙여서 많은 말들을 재 가공해 가지 않나 싶다. 라면이 우리의 사랑을 받는 만큼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진장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본다. 이렇듯 하나의 언어가 많은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위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끊임없는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죽은 사람도 관계속에 연결되어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관계에 축을 이루는 것은 너와 내가 아닐까 싶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이를 관계라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인지된 사람도 어느 순간에 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간접적인 관계인 것이다. 쉬운 예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나 중국의 시진핑 주석 같은 경우 우리처럼 보통사람들은 만날 기회도 없을뿐더러 만난다 하여도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으로 인지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를 신경 쓰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와 관계없는 대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관점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쉽게 말하면 볼 줄 아는 안목이랄까 더 나가서 판단하는 능력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관점이 생기면서 자아가 발달하고 그것이 더 나아가 자신의 철학이자 소신으로 발전이 되리라 본다. 이런 관점은 하루아침에 정립이 되는 것은 아니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주변의 환경이나 교육, 다양한 인간과의 관계, 경험 등이 총체적으로 어울려 이룩되게 된다. 이런 관점이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상대방과 대화를 해 보면 그 사람의 관점이 무엇인지 판단되는 것도 서로가 관점의 공유는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우리는 관점을 자기중심적으로 보느냐 아니면 타인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판단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똑 같은 현상을 보고 난 후 느끼는 것이 판이할 때가 흔히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판단의 요소가 들어가면 사람마다 다 다른 관점이 스멀스멀 나오게 돼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이 우리의 사회를 튼튼하게 엮어주면서 건전하게 유지 발전을 시켜줄 수 있는 요소로서 역할을 하리라 본다. 관점이 객관적으로 엮어지면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고 편향적으로 엮어지면 갈등의 요소가 된다는 것도 인식하리라 본다. 어떤 관점으로 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가 나가는 방향도 달라진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관점이 강한사람을 보고 아집형 인간으로 칭하기도 한다. 좋게 표현하면 소신과 주관이 뚜렷하다고 할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고집불통으로 인식되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관점의 태생은 자기주관적인데서부터 먼저 출발한다고 본다. 가장 원초적인 자기중심적인 행동은 어린아이들의 떼일 것이다. 되지도 않은 것을 내 놓으라하면서 부모를 달달 볶는 행동을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또한 보통 어린 아이들이 혹시 잘못을 저지르면 철부지가 그런 행동을 했는데 뭘하면서 관용의 잣대를 사용하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철부지란 것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인 행동을 일삼는 경우를 칭하는 것이다. 이런 것 이외에도 인간 개개인이 가지는 관점의 출발이 자기중심으로 간다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자기주관형 인간도 나이를 먹고 주변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다보면 서서히 객관화가 되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철이 드는 것이다. 어렸을 때 생떼를 쓰던 행위도 점점 줄어들면서 타인의 입장도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인간은 자기중심과 타인중심 사이에서 절묘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주변에서 보았을 때 자신 위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이기적인 인간으로 판단할 것이고 남을 좀 더 생각하는 사람을 인간적인 사람으로 평가를 하리라 본다. 이런 것 자체도 명쾌한 선이나 잣대가 없다는 것도 다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너무 딱딱한 언어로 표현하다보니 실감이 덜 나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가장 이슈화 되고 있는 뉴스로 평창동계올림픽이 있을 것이다. 국제적인 행사를 하면서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으리라 본다. 방송이나 인터넷매체,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하여 올림픽과 관련된 뉴스나 이야기거리가 한도 끝도 없이 쏟아졌다. 올림픽 기간 동안 가장 큰 존재가치를 발휘했던 사람들은 물론 선수단과 스탭진이었겠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직업의 종사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이번 올림픽을 좀 더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뉴스를 우리는 다 수용할 수 도 없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도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자신들이 관심있는 부분에서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보았을 것이고 귀를 더 열어서 들었을 것이다. 그 만큼 우리 자신들의 판단도 녹여 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바로 이런 단계가 공감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사가 있다하여도 공감이 안가면 비난으로 가거나 냉소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세계가 나의 인생 영역이라 보면 될 것이다. 여기에는 내 의지대로 될 수 있는 것도 있고 나의 한계를 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 의지대로 될 수 있는 부분은 그대로 밀고 가면 될 것이나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한 해소책은 사람마다 다 다르리라 본다. 어떤 대상이 있다고 가정하자. 있으면 보이는 것이고 보이면 판단을 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라 본다. 이 판단의 척도를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부터 들이대고 볼 것이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자기 주관적인 측면부터 강조를 것이다. 제목과 같이 내 라면을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성향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라면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인도의 독립운동가였던 간디가 어느날 기차를 타고 막 출발하려는데 신발 한 짝이 창밖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택시나 버스 같으면 운전수에게 세워달라고 이야기하고 주서 신으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지만 기차가 되다보니 그럴 수도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해서 간디는 나머지 신발도 벗어서 처음 신발쪽으로 던졌다고 한다. 이유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맞기면 더 좋을 것 같다. 어찌보면 좀 유치한 일화 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상당히 고차원적인 이야기 같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내 라면과 너 라면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하였을까에 대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문 밖으로 나갔을 때 발만 동동 구르면서 안타까움과 탄식만 가슴속으로 호소했을 것이다. 여기서 너 라면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디는 내 라면보다는 너 라면에 치중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간디가 필자의 머릿속에 남아 글로 재탄생되는지도 모른다.

 

   생각의 영역은 끝도 한도 없다고 했다. 생각 같아서는 지구도 삼킬 수 있을 것이고 우주 끝까지 날아갈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현관 문 밖에 나가는 것 조차 많은 판단이 종합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인 만큼 인간이 실제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영역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해야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된 인간은 본능보다는 이성쪽으로 가는 것이 더 매력적인 인간으로 보여질 것이다. ‘내 라면도 중요하겠지만 너 라면내 라면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타인으로부터 인간적인 매력자로 인식을 받지 않을까 싶다. 나는 어떤 부류의 라면일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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