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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㉟ - “화자와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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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4 작성일 2016-05-31 23:04 댓글 0건 조회 1,1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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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여자애들의 이름은 한결같이 돌림이었습니다.

순자 영자 정자 금자 청자 화자 심지어 갑을병정에 낳은 순서대로 자를 붙여 지은 이름까지 있었으니 선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어느 집 셋째 딸의 이름은 병자(丙子)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에미꼬(えみこ惠美子)’니 아끼꼬(あきこ晶子)니 해서 라는 돌림자에 영향을 받은 듯한 이 이름들은 훗날 촌스러운 이름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는데 지금은 거의 작명에서 쓰지 않는 이름들입니다.  

지난 주,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순자를 만났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셋씩이나요. 여자동창생들은 저희들끼리 익숙한 듯 큰순자 중간순자 꼬마순자라고 거리낌 없이 불렀습니다. 정자도 만나고 화자도 만났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웬만하면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을 할만도 한데 그 애들은 아직도 그 이름 그대로 쓰고 있었지요  

촌스럽긴 하지만 길섶에 핀 찔레꽃 처럼 순박하고 정겨운 이름들... 화자는 오래전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 봐주는 재미로 살고, 청자는 아직도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금자는 이름처럼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셋을 불러서 한곳에 모아 놓고 말해 줬습니다. “이제부터 남은 생애, 화자(話者)는 말 많이 해서 사람들 즐겁게 해주고 청자(聽者)는 남들이 하는 말 듣기만 해라. 그리고 금자(金子)는 지금껏 번 돈의 10분의 1을 동창회 기금으로 내놓거라. 그래야 너희들 오래 산다.”   

웃자고 한 이 엉터리 주술을 ()를 대신해 筆者가 했지만 ()는 말해 준대로 듣기만 했고 金子는 오래 살고 싶었는지 아니면 이름값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거금(?)을 동창회 기금으로 선뜻 내놓았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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