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동문 문화예술

길 위에서 길을 묻다 ④-1 “두 번째 사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A4 작성일 2015-10-12 23:11 댓글 0건 조회 1,016회

본문

 

한 달여 전 서울에 사는 두 살 어린 이종사촌 누이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습니다.

한 동안 소식이 없어 뜸하게 지내던 차에 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는가 싶어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이렇다 할 인사말도 없이 전화에 대고 불쑥 던지듯 내뱉는 말이 이랬습니다.


“오빠. 혹시 학교 때 ㅇ순이가 기억나?”

내가 대답을 한 것은 한참동안 정신을 수습하고 나서였습니다.

“ㅇ순이? ㅇ순이라?!...”

“그런데! 네가 걔를 어떻게 알아?”


“(누구와 같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우리끼리 학교 다니던 때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글쎄 ㅇ순이가 말하는 첫사랑 캐릭터가 꼭 오빠랑 닮은 듯해서 혹시나 하고 전화 해 본거야. 오빠 혹시 학교 다닐 때 이러 이러하고 저러저러한 적이 있었어?”


“그래 그런 적이 있어. 그리고 걔 이름이 ㅇ순이라고?”


그때부터 나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컥 컥 막혀오고 머리까지 어질거렸습니다. 그래, 그런 여자아이가 있었지. 언제나 말끔하게 잘 다려 입은 권색 세라복에 단발머리의 그 소녀.


신문배달을 하기 위해 날마다 달리던 그 시장골목 어귀에 살던,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의 딸 ㅇ순이.


그런데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왜 가슴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비밀을 마치 정보기관이 비밀 해제하듯 친구들에게 털어놓았을까? 설마 친구 중에서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해 마음을 털어놓았겠지만 그녀의 예상은 빗나가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극적인 사연이 이종사촌 누이를 통해 필자에게 까지 알려지게 됩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데, 40여년의 세월동안 그녀는 나를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갑자기 죄스러움 같은 것이 ‘훅’ 하고 밀려왔습니다.


이 기막힌 인연에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잔뜩 흥분된 이종사촌 누이의 표정이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역역했습니다.


그리고 어니언스의 ‘편지’가 한창 주가를 높이던 그 시절의 노랫말처럼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그리고 꼬깃 꼬깃 접어 전해줬던 한통의 편지”. (다음 회에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