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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냐 채찍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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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06-16 11:13 댓글 0건 조회 6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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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이냐 채찍이냐


  당근을 제일 좋아하는 짐승이 말이라는 것쯤은 말 상식이 있는 분은 다 아시리라본다
. 말과 당근을 연결시키는 것은 우리 인간사회에서도 뭔가 메리트를 주면 잘 할 것 같은 상황에서 나온 연결고리가 아닐까 싶다. 인간에게 당근과 채찍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보고자 한다.

 

  우리는 예전에 학교 현장에서 공부를 할 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받았다고 본다. 인간의 본능 상에 당근의 효용가치는 금방 떨어지고 채찍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해서 옛날 농고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당시에 잘 배웠던 기억은 거의 없고 오로지 주어 터지던 기억만 생생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대표적인 당근은 장학금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교 졸업생 중에 99% 정도는 장학금 근처에 가 보지도 못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장학금이라는 제도가 있었고 그 제도 하에 장학금을 탔던 사람도 있었는지라 그것이 학문을 더 발전시키는데 촉매제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을 하는 것이다. 장학금을 탔던 사람은 받아서 분발을 했을 것이고 타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타 보려고 분발을 했으리라 본다. 아예 분발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았던 사람이 아닌 이상은 장학금을 받아 봤으면 하는 열망을 조금은 가졌으리라 본다.

 

  당근이 교육에서 얼마나 좋은 효과를 거두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 다르리라 본다. 물론 당근을 받기 위해서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없겠지만 열심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노력을 하면 당근이 나온다는 것쯤은 알고 행동을 했으리라 본다. 그 덕분에 지금에 이 정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근의 대척점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채찍이었다. 당근보다 효과가 백배는 더 컸지 않았나 싶다. 비용도 크게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떤 채찍은 인간의 손바닥에서 끝나는 경우도 있었고 또 어떤 채찍은 농구실이나 교실 뒤편 청소함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채찍은 잘 달리는 말을 더 잘 달리게 하는 방편의 도구로 쓰였으나 인간에게의 채찍은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의 의향과 어긋나는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어 왔다고 본다. 더 쉽게 접근한다면 말 안 듣는 놈을 조지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효과는 좋으나 인간 내면으로부터 반감을 사기 십상인 도구였다. 몇 십 년 전에 맞은 채찍이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았을 때 그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반추해보면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썩 좋은 교육방법은 아니라 판단된다. 좋게 생각하면 당시에 채찍을 사용하셨던 선생님 덕분에 그래도 이 험악한 사회에서 이 정도로 살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채찍보다 당근쪽으로 교육의 축이 바뀌었다. 함부로 채찍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휘둘렀다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는 세상에 온 것이다. 이렇다 보니 효과가 만점인 채찍이 뒷켠으로 물러가고 그 사이를 당근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근은 속성상 효과도 느리고 자꾸 사용하면 내성이 생겨 효과가 반감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예전보다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캔블랜차드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장학금은 비용이라는 것이 발생하지만 칭찬은 립 서비스로 당근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마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칭찬도 칭찬을 받을만한 일을 할 때 효력이 있는 것이지 엉뚱한 일을 떠벌린 자에게 무턱대고 칭찬을 해 줄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샛길로 가는 사람에게도 칭찬의 요소를 찾으면 보일 것이다. 그 틈바구니에 있는 장점을 찾아서 격려하고 자극을 해 주라는 것이다. 나중에 그것을 모멘텀으로 분발하여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당근보다 채찍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커가는 세대들에게 당근의 잣대를 대고 지도를 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영역에서 통제에 들어가야 할 대상을 보면서 칭찬보다는 비난이나 힐책을 우선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배우고 익혀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도 앞으로는 당근쪽이 대세임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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