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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 귀에 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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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04-24 15:17 댓글 0건 조회 8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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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 귀에 경 읽기

  사람도 경을 읽어주면 뭔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이비재하리라 본다. 여기서 말하는 경은 불경을 의미하리라 본다. 불교의 발상지는 인도이지만 전래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지라 온통 한자로 표현이 되어있었다고 본다. 종교의 바탕은 저승의 철학에 가까운 학문임으로 보통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리라 본다.

 

  경은 인간의 생사를 넘나들면서 쓰여진 철학책임으로 이해를 하고 실천을 한다는 것은 용이치 않다고 본다. 보통사람들이 한 두 번 듣고 읽어 본다고 그 심오한 이치가 터득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보통의 인간에게 들려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을 소에게 들려준다고 생각해 보자. 한마디로 되지도 않는 말이자 웃기지도 않은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살아서 쓰여지는 것을 보면 거기에는 매력적인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생명체나 마찬가지여서 살아 움직인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쇠 귀는 누굴 것인가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옛날에 만들어진 문장인 관계로 만들어질 당시에 소 귀가 어떤 대상이었는가를 살펴보면 쉽게 풀리리라 본다. 문제는 이 문구가 언제 누가 어떤 연유로 고안해 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허구 많은 동물 중에서 왜 쇠귀에다 경을 읽어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에 대해서 이이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말도 있고 닭도 있고 개도 있을 터인데 굳이 쇠귀를 택해서 경을 읽어 줘야겠다는 발상을 했는가 이 말씀이다. 잘은 모르지만 많은 동물의 귀 중에서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의 귀를 소에서 도입해 오지 않았나 싶다. 다른 동물들의 귀도 많지만 소처럼 우리 인간에게 밀접한 동물도 없었으려니와 비쥬얼로 보아도 가장 듬직하고 신뢰를 보낼 수 있는 동물의 대상이 소였는지도 모른다.

 

  문구를 살짝 바꿔서 개귀에 경 읽기또는 말귀에 경 읽기라고 표현했다면 소보다 덜 실감이 나리라 본다. 물론 우리가 쇠귀에 경 읽기란 이야기를 하도 많이 썼기에 입에 올리기가 쉬울 수 도 있겠지만 그래도 쇠귀에 경을 읽어 주는 것이 타 동물에게 읽어 주는 것 보다는 보편 타당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상상을 해 본다.

 

  어차피 소에게 경을 읽어 줘 봐야 아무런 의미를 못 느낀다는 것쯤은 이 문장을 만든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쇠 귀에 경을 읽어 주는 듯한 가운데서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본다. 그래도 쇠 귀에 경을 읽어주는 것 보다야 덜 답답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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