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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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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9-02-03 08:09 댓글 0건 조회 7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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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기촌의 추억

 

강릉농공고를 나온 사람 중에 부기촌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 본다.

옛날 강릉 관아를 중심으로 동남쪽 야트막한 언덕 윗 자락을 바탕으로 펼쳐져 있으며 옛 정취가 아직까지 많이 살아 있는 마을이라 보면 될 것이다.

구한말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신 건축물이 적절히 조화된 듯 느껴지기도 하는 그야말로 신구 건축물들이 공존하는 무대라 보면 될 것이다.

또 한 언덕바탕에는 비가 오면 축대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한 느낌을 주는 곳도 여기저기 보인다.

 

건축물의 시간대가 머물러 있는 곳이 강릉에서는 부기촌과 성남동 가구 골목쪽, 옥천동 일부 저지대 등이 남아 있지 않나 싶다.

어찌 보면 근대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가옥 구조를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료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민초들의 삶을 그대로 보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 곳에 살았던 사람이나 현재 사는 사람들의 애환은 오죽하랴.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땅도 개발되어 십 수층짜리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판에 강릉의 도심 근처에 있으면서도 달동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이다.

그 쪽에 사는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니 되어 그대로 존치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던 부기촌이 그 남사면이 사정없이 잘리면서 더샵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잘린 경계면을 중심으로 부기촌은 외관상으로 부촌과 빈촌으로 나누어진 듯 한 느낌도 들어간다.

아파트 쪽은 최신식으로 개발되어 그럴듯하게 보이는데 북사면 쪽은 아직까지 달동네의 모습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하였던 부기촌은 우리 농공고출신과는 인연이 많은 곳이라 본다.

예전에 이쪽에서 자취나 하숙을 하던 시절, 외지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이 머물렀던 곳이 부기촌이기도 하다.

우선 학교와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시내 중심부와도 근접하는 등 지리적 위치에서는 비교우위에 있던 곳이라 본다.

거기에다 집들이 허름하다 보니 방세가 헐하고 그러다 보니 금전적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 그쪽에 많이 머물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학생들이 부기촌쪽으로 들락날락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박월동이나 신석, 월호평동, 노암동, 학산 등에서 살았던 경우에 등하교는 부기촌 골목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도 부기촌 골목을 지나 다녔던 기억이 날 정도이고 보면 우리 농공고와 부기촌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부기촌이 일부 재개발되지 못하고 재단장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옛날 시멘트 부록꾸로 만들어진 담벼락에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벽화를 그려 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서 깨지고 흐트러진 담벼락을 정비하고 벽화를 도입함으로서 외관상은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내면의 세계는 크게 변치 않은 상태로 있는 것이다.

 

오늘 모처럼 부기촌 쪽으로 가는 길이 있어서 유심히 바라보았다.

물론 옛날 생각을 더듬으면서 가는 터이라 정감이 더 났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개발이 될 때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가고 또 한편으로는 옛 것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을 수 있어 정감이 가긴 갔다.

거기에다 과거 농공고를 다닐 때 추억까지 겯들 일 수 있어서 더더욱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좀 거칠었던 과거도 지나고 나니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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