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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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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인간이 설탕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곶감이 가장 달다고 인식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단맛의 대명사로 곶감을 지목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설탕이 나오기 전에 곶감만큼 단맛을 내는 식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도 곶감의 단맛은 그 어떤 천연물질보다 더 강하다는 것에 대해서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본다.
곶감을 만든다는 것은 떫은 감을 달콤하게 만드는 게 주목적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감이라는 농산물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곶감은 특정 계절에만 맛 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이다.
특히 냉장고가 발달되면서 곶감도 반물레기 식으로 만들어 남녀노소 누구나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곶감의 소비 영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영동지방에서는 예로부터 곶감의 명산지로 자리매김 되었었다.
집집마다 한 두 그루 정도의 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에서 나오는 감을 가지고
친감도 담가먹고 곶감도 만들어 먹었었다.
혹 감나무가 많았던 집에서는 상업적으로 곶감을 만들어 판매까지 했으며 그 매장이
지금 중앙시장 북쪽 골목에 있는 곶감전으로 그 흔적은 남아있다.
예전 곶감전에 곶감은 지금과는 만드는 방법이 조금은 달랐다고 본다.
곶감을 만들 시기에 산과 들에 나오는 매촐한 싸리꼬쟁이를 베어나가 깎은 감의
중간부위를 관통시켜 양쪽에 새끼를 늘어뜨린 다음 그 사이에 꽂아서 말렸다.
어느 정도 말린 다음 그 싸리꼬쟁이에서 빼낸 다음 작은 싸리꼬쟁이에 촘촘하게
밀착시켜 다시 꽂는다.
그것을 소위말해 한 접으로 틀을 짠 다음 유통을 시키게 된다.
잘 짜여진 곶감 틀은 군 담요 접어서 각이 딱딱 나듯 사각형으로 각진 폼이 저절로
났었던 모양이 떠올라진다.
특히 곶감꽂이 마지막 마무리는 싸리꼬쟁이를 여러 가닥으로 쪼갠 다음 방사선
모양으로 만들어 끝에 있는 곶감이 빠지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거의 압권이었었다.
이렇게 만든 곶감은 보기에는 그럴싸하였으나 위생적으로는 그리 좋지는 않았다고 본다.
싸리꼬쟁이에 꽂아서 만든 곶감의 특징은 그 꼬쟁이가 지나간 부위는 거무틔틔하게
되어 비주얼 또한 별로였었다.
하지만 당시에 기술로는 그런 방법이 그래도 제일 나았다고 생각했기에 거기서
정착되어 몇 백 년을 이어왔다고 본다.
지금은 도구가 발달하면서 위에 제시한 사진처럼 곶감 깎고 만드는 과정에 많이
변해 있음을 볼 수 있다.
곶감을 만드는 감도 과거에는 재래종이 주종을 이루었다.
지금처럼 품종이 개발된 것도 아니고, 재배기술이 발달하여 우수한 품질의 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자연이 보시해 준 만큼의 감을 가지고 곶감을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감의 품종이 재래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씨가 많은 것이 주종을 이루었다.
곶감 하나를 먹다보면 씨 발리다가 볼 일 다 볼 정도로 먹기에도 번거로웠었다.
그 와중에 지금의 대봉과 비스무레한 동철이라는 감이 있었으니 그 품종이
고종시라는 것이었다.
보통 감은 편원형인데 동철은 갸름하면서 길쭉한 감으로서 곶감을 만들어 놓으면
크기나 맛에서 타 감을 추월했던 품종이었다.
곶감의 쓰임새도 다양했다고 본다.
단맛을 내야하는 곳에는 곶감이 들어가지 않고는 꼴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설탕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만큼 단맛을 내야하는 음식에는
무조건 곶감이 들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엿이나 꿀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곶감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고 귀했기 때문에
재산이 좀 있는 집안이 아니면 구경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상징적인 것은 제사상에 올라가는 것이다.
제사상에 오르는 조율이시에서 마지막에 놓여지는 과일인 것이다.
지금처럼 일 년 내내 생산이 안 되었던 만큼 곶감은 어느 때고 제사상에 올라올
수 있는 과일로 각광을 받았었다.
일반 가정에서는 감껍질 말린 것도 훌륭한 식재료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떡을 만들 때 좀 달짝지근하게 느껴지게 하기 위하여 감미료로
사용되었다.
물론 밋밋한 색깔의 떡을 보기좋게 만들 수 있는 장식의 요소로도 사용되었다.
떡을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간식용으로도 훌륭하게 쓰여졌다.
과욕을 부려 많이 먹었다하면 배변의 곤란을 겪었던 경험도 떠오른다.
세월과 시대가 변하면서 곶감의 지위도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다.
성남동 곶감전 골목에도 곶감을 판매하는 매장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단맛을 내는 대명사의 음식도 이제는 설탕이나 초콜릿에게 내 주고 말았다.
어린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는 곶감이란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초콜릿 데이는 있으나 곶감 데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곶감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늦가을이 되면서 시골집 처마 밑에 매 달렸던 곶감 말리는 광경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신 아파트 베란다에 곶감 말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곶감을 만들 수 있는 감의 품종도 많이 개발되고 있다.
요즘 많이 재배되는 곶감 품종으로는 대봉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크기도 크고 씨도 한 두 개 밖에 들어있지 않아서 곶감을 만들어 놓았을 때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게끔 개발되었다.
게다가 곶감을 꽂을 꽂이도 새롭게 개발되어 간단하고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게끔
발달하였다.
한 술 더 떠 곶감을 만들 때 가장 힘든 장면이 서너 가지가 있다.
감을 재배하는 것도 힘든 과정일 것이고, 그것을 따는 것은 재배하는 것 못지않게
중노동이 수반될 것이며 마지막 단계에서 감 깎는 일은 고역 중에 고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생감을 깎는 일는 기계가 대행을 해 주는 시대가 왔다.
칼로 깎던 시대에서 기계가 알아서 깎아주는 시대로 변했다는 것이다.
깎는 속도도 빠르고 균일하게 깎을 수 있으며 대량으로 깎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기계화가 안 되는 영역이 있으니 감을 따는 일일 것이다.
감 따는 장대로 감을 한 나절만 따다 보면 목이 부러질 정도로 힘든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감나무를 너무 높게 키우지 말고 사다리 정도 높이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도록 제어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말리는 과정에서도 날씨가 쌀쌀하고 늦가을 해가 쨍쨍 내리쬐면 좋겠지만 흘찍한
날씨가 이어지거나 비가 찔찔 오면 곶감 표면이 머무틔틔해지는 증상이 생기게 된다.
다 된 죽에 코 떨어지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재배는 영동에서 곶감 말리는 것은 좀 번거롭지만 대관령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곶감을 어떤 감으로 만들어야 제 맛이 날 것인가.
아직까지 곶감 전용으로 만들어진 감 품종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곶감 전용 감을 만들어봐야 묘목장사가 안 된다는 반증일 것이다.
할 수 없이 떫은 감을 깎아서 만드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떫은 감의 종류가 많기에 그 감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는 관계로 그 특성이 나오는
곶감이 나오리라 본다.
어떤 감을 가지고 곶감을 만들었을 때 가장 보기 좋고 맛있는 곶감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곶감 고장에 가서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경북 청도나 상주, 충북 영동 같은 곳은 우리나라 곶감의 명산지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특히 청도에는 청도반시라는 감 씨가 거의 없는 감으로 곶감을 만들어 전국명성을
얻고 있다고 한다.
생각을 좀 달리하여 단감을 가지고 곶감을 만든다면 어떨 것인가.
깎고 달고 말리고 하는 과정 없이 사각사각하면서 달콤한 단감을 뭣 하러 곶감으로
만들려고 하는가에 대한 반문도 가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다보니 단감 곶감이란 말이 나올 겨를이 없었다고 본다.
단감으로 곶감을 만들었을 때 그 풍미가 신통치 않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새로운
맛이 난다면 이 또한 발상의 전환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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