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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52 – “이 남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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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16-09-25 15:42 댓글 3건 조회 1,00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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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새장을 떠난 새처럼 포르릉 호주로 가출을 한지 4일 째입니다.

여행을 떠나도 가출은 가출입니다. 아닙니다. 가출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야 오기 비슷한 것이 생겨 나 혼자만의 생활에 충실(?)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제부터 나도 요즈음 뜬다는 인간 트랜드 혼남입니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어 아내가 출발한 다음 날이 마침 학교가 축제기간이라 하루짜리 휴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이 챤스를 어떻게 멋지게 살리느냐에 몰두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내로부터 너무 촉박하게 통보를 받는 바람에(이건 미리 말을 했다가는 여행기간에 행여 자신이 감당 못할 행각이라도 벌어질까 하는 염려에서 아내의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이루어진 일로) 준비가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래, 아내가 그동안 나에게 금기시했던 것만 골라서 하자

금지된 장난 같은 거 말입니다. 오랫만에 맛보는 이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한 복수가 아니겠는지요?

그렇다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아내가 없는 틈을 타 뭐 첫사랑 여인을 만난다거나 집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은 상상 같은 것은 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고백컨대 카톡은 한통 보냈습니다만 아내가 미리 씻김굿이라도 하고 갔는지 그녀로 부터는 쉼표 하나라도 찍는 댓글도 없었습니다.)  

룰루랄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거실에서 멋있는 폼으로 끊었던 담배도 한 대 피워보고, 점심시간에는 혈압 때문에 못 먹게 해서 한동안 구경도 못했던 라면을 사다가 끓이고 찬밥에 말아 먹습니다. 쇼파에 누워 꿀잠도 한잠 잤습니다. 커피를 생으로 끓여 커피향기를 방안 가득 채워놓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탈렌트 이순재도 본다는 19금 영화도 한편 보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겨우 나흘째부터 부터 신변에 조금씩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새롭게 갱년기라도 온 듯 부쩍 외로워지고 TV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명장면에서는 혼자 보는 것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그토록 좋던 식성도 사라지고... 어젯밤에는 말입니다. 퇴근 후에 이방 저방 뭐 재미난 꺼리가 없을까 하고 훑고 다니다가 냉장고 속에 아내가 쓰다가 넣어 둔 마스크팩이 눈에 띄기에 얼른 얼굴에 붙이고 누웠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일어나나 TV는 혼자 왕왕거리고 창밖에는 햇살이 가득했습니다. 밤새 커튼도 열린 채였습니다. 처음 각오와 달리 슬슬 혼남혼생에 지쳐간다는 증거입니다. “

우쉬! 더럽게 자존심 상하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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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님의 댓글

바람소리 작성일

이삼일만 더 버티면 씽글의 자유로움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깨닿게 될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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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슬슬 옆꾸리가 시려야 합니다.
날짜를 손꼽아야 하구요.
뭘 못해준 것이 생각나야 하지요.
활짝 웃던 모습이 문득 떠오르면
증상은 중증 "가을남자"입니다.

자유로움의 시험에는 들지 마십시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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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두 분 말씀 중 어느 것이 정답일지 인내심을 가지고 견뎌 보겠습니다. z 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