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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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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함께
행복이라는 것을 한 단어로 재단한다는 것은 공맹자도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똑 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더 행복하길 바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행복의 세계로 입성하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쓴다고 본다. 행복을 찾는 것 조차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될 정도로 행복이란 단어의 함축적 정의는 힘들다고 본다.
우리는 구체적인 것을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교육 자체가 오로지 구체적인 것만 추구하는 세계를 강구하기 때문일 것이라 본다. 정답만 찾아가는 교육시스템에서 추상이라는 개념은 설 땅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행복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시험문제가 나와야 되고 그 답은 사지선다나 오지선다의 형식 중에 하나를 찾아야 한다. 행복이 무엇이냐라고 물어 왔을 때 사전적인 의미에서 “심신이 안정되고 만족스러운 상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행복은 신기루인가?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는 사람도 있다. 찾기는 찾아야 되는데 그 행복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혹자는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 기대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 우리나라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삼* 그룹의 현재 회장님을 매치 시키면 수긍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결국 돈이 곧 행복이란 등식은 이런 경우을 빗댄다면 한 방에 허물어질 수 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 없이 행복해 진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라 보면 이 또한 행복의 한 축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년 초만 되면 우리의 행복 요소 중에 건강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이야 말로 공기처럼 건강할 때는 아무런 제약요소가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요소이다. 막연하게 건강하게 살아야하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건강한 상태에서는 건강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용이치 않다는 것이다. 건강이 행복이라는 것은 건강치 않은 조건을 맞이한 다음 맛 볼 수 있는 심리적인 상태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고 본다. 옆집에서는 쌀밥을 먹는데 우리는 보리밥을 먹는다고 했을 시 보리밥을 먹고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옆집은 피죽을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보리밥을 먹는 자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보통사람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행복의 정점에 있어야 할 것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조차 없을 것이다. 같은 단군의 자손인 북한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 보면 우리들의 삶에 질은 그들보다 훨씬 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현재의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이 몇몇이나 될는지 의문시 된다.
행복의 척도가 국민총생산과 맞지 않는 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중남미의 코스타리카나 히말라야 산륵에 부탄공화국 같은 나라는 일본이나 미국같이 부자의 나라도 아니고 서유럽처럼 민주주의가 발달된 나라도 아니지만 국민행복지수는 높은 나라로 알려지고 있다. 행복이 물질이나 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대목이라 본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궁금할 수 있을 것이다. 그쪽에 가 본 적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기에 단언하여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행복의 척도는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공통적인 척도도 중요하겠지만 인간 개개인이 가지는 심인적 척도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굳이 불행으로 갈 필요가 있을는지 의문시 된다. 몇 천 년을 산다면 몇 백 년 정도는 불행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맛보고 살 수 있겠지만 100년도 유지하기 힘든 유한한 인생에 진한 불행까지 맛본다는 것에 대하여 공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리라 본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현실은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 생각된다. 불행의 그림자를 걷어 내기 위하여 허우적거리는 과정이 인생사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내일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초다짐인지도 모른다. 설사 내일에 내가 만족하는 행복이 오지 않는다 하여도 오늘을 충실하게 살면 내일은 오늘 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기대감인 것이다.
행복을 한 단어, 한 문장, 한 영역별에서 다 표현한다는 것은 용이치 않은 문제라 본다. 하지만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세계가 행복이라 한다고 했을 시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쯤은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불행으로 가는 시행착오를 좀 더 줄이는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전자에서 밝혔듯이 행복이 물질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물질을 추구하는 인생 쪽으로 핸들을 틀면 될 것이다. 어쩌면 가장 쉬운 행복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라 보면 될 것이다. 마치 팬더 곰이 대나무 잎을 씹으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잎을 먹으면서 원만한 삶을 영위 하듯이 인간도 단순한 부분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야말로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세계는 너무나 광대하고 끝이 없는지라 짧은 지면으로 모든 것을 다 부각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본다. 천만 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도 어떤 사람은 만족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족을 아는 사람은 그래도 불행의 세계까지는 안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불행이라 생각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이라는 것도 인간의 생활에서 어떤 획기적 전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배부르고 등 따시면 사람은 나태해 지게 되어 있다. 뭔가 자신에게 위기의식이 다가 왔을 때 새로운 세계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마냥 행복한 생활만 이어진다면 거기서 모든 것은 정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에서 새로운 세계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보았을 것이다. 단 인간은 그런 세계를 갈망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지지고 볶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행복이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은 그 결과에 대해서 정신적이던 물질적이던 많은 것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런 소득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세상을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남의 인생과 비교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는 본인의 판단이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서 타인과 비교하는 순간 인간의 이맛살을 찌부러지게끔 구조적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는 유전인자가 조상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심보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손 안에 주먹같은 다이아몬드가 있다하여도 남이 더 큰 것을 가지고 있으면 배가 아프고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행복도 끝이 없고 불행도 끝이 없다고 본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의 요인을 걷어 내려고 애를 쓰면 될 것이다. 인생사 늘 행복으로만 점철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또 불행으로만 엮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살아오며서 늘 인식하리라 본다. 내 처지가 타인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 자신이 타인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리라 본다. 과거처럼 단순한 생활로 인생을 엮던 시절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영역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웠다고 보지만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세상할 일은 많다. 하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내 손은 늘 공허한 것이다. 이것 저것 다 힘들다면 체념 모드로 들어가면 간단하다고 본다. 이 영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인간은 멍청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내 마음에 가지고 있는 행복의 잣대가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나는 별로 행복한 인생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진정한 행복은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삶에 한 순간 한 순간 마다 행복의 요소를 집어넣어 보자는 것이다. 밥을 한 숟가락 먹으면서도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년 초가 되었다. 올해의 행복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행복의 잣대를 좀 더 부드러운 모드로 바꿔보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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