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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오답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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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11-24 10:08 댓글 0건 조회 9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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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오답은 있다.



   우리는 면접이라 하면 우선 시험이라는 개념이 먼저 떠오른다고 본다
. 실제 사전적 의미의 면접은 면대면의 시험의 성격도 있지만 서로 얼굴을 보는 개념도 들어 있다고 본다. 시험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았을 경우 어떤 조직에 들어가기 위한 전초단계의 과정이라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조직의 범위가 어디까지 일 것인가도 유심히 살펴볼 문제라 본다.

 

   면접은 한자어로서 한국말로 풀어 쓴다면 얼굴을 서로 본다는 개념일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것 자체를 면접이라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본다. 일상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을 면접으로 보았을 때 그 안에는 암묵적인 평가가 들어가리라 본다. 서로가 가까운 사람이건 생견 처음 본 사람이건 사람이 얼굴을 대하는 순간부터 평가라는 잣대를 서로가 들이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단 어떤 조직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에서는 평가의 결과를 수치화 시키게 되지만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면접은 그 결과를 수치화 시키지 않을 뿐이지 묵시적인 평가는 들어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순수한 만남 자체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불손한 행동일지는 모르지만 내면의 의식세계에서는 평가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무진장 다양하다고 본다. 순수하게 만난다는 것도 그 안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유라는 것이 만남의 목적이라 보면 될 것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면대 면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문화 중 문상의 문화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망자에게는 명복을 빌어주기 위하여, 망자 가족에게는 이별에 대한 아픔을 보듬어주기 위하여 문상이라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면접에다 대입을 시켜본 적이 있는지? 문상에서는 망자와의 면접도 있는 것이다. 단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관계로 독특한 방법의 면접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의 만남이자 이승과 저승에 있는 사람의 만남이라 보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얼굴이 있고 또 한쪽에서는 영혼이 있는 것이다. 이들의 만남도 면접의 부류에 넣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간다.

 

   넓은 의미에 면접 중 가장 짜릿한 것이 선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생면부지의 남녀가 첫 만나는 자리가 선 보는 장소일 것이다. 잘만 하면 인생의 스토리가 바뀌는 중차대한 자리인 것이다. 이런 자리에 나가는 사람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대충대충 임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골백번의 선을 보아도 원만한 사이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조직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에는 준비를 엄청 하고 간다. 학원에 가서 트레이닝도 단단히 받고 임하게 된다. 그런데 선 보러 가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선 보러 가는 과정을 더 확실시 하기 위하여 학원에 다녔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선 보는 과정보다 더 냉정한 평가가 있을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면접에서는 그 사람의 행동과 언어를 통하여 수치화 시킨 후 탈락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선이라는 것은 수치화나 계량화는 안 되지만 심리적인 평가는 혹독하리만큼 가혹하다고 보면 될 것인가. 선 보는 시간대에 상대방의 외모는 물론 내면의 세계까지 읽어야 한다. 서로가 땀을 쥐게 하는 공방이 머리와 가슴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땀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활동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고 거기에 걸린 타이틀도 크다는 것이다. 선 보는 상대자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잣대에다 요모조모 다 올려놓고 재단을 하기 시작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평가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미사여구를 쓴다 해서 상대방이 잘 평가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일반 면접도 식은땀이 흐르겠지만 선 보는 과정도 그와 못지않은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계에서는 또 어떤가? 정치만큼 큰 이익집단도 없다고 본다. 경제는 그 주체에 범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혜택을 보지만 정치는 불특정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분야라 본다. 자원이 아무리 풍부하다 하여도 정치가 개판이 되면 그 나라의 백성은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는 정치인과 유권자의 관계이자 만남이라 본다. 선거 시즌이 다가오면 많은 정치 지망생들이 유권자와 면접을 보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유권자가 면접관이 되는 기분일 것이다. 물론 선거가 끝나고 취임선서가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정치인은 슈퍼 갑이 되는 양상이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본다. 그렇다면 정치인과 유권자인 일반 백성들과의 면접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것인가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 본다. 예전에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분류하여 선택하기가 좀 수월(?)했다고 보나 이제는 진정으로 국가와 백성을 위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야 하는 시대로 들어왔다고 본다. 정치인도 준비를 많이 해야겠지만 그들을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는 더더욱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삶의 현장은 면접에서 시작하여 면접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빈슨크로스가 아닌 이상 인간의 삶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내가 면접자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내가 면접관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일상사에서 면접을 보는 사람도 힘들고 면접을 해야 하는 사람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면접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조직이나 집단에 활력이 있음은 물론 미래도 밝다는 것이다. 작은 범위에서는 가정에서, 더 넓은 범위에서는 사회에, 그 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는 국가와 국가가 면접을 통하여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집 안에서 딩구는 순간에도 가족 누구에겐가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준엄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리라 본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그리 자유스럽지 못함을 고백하는 바이다. 밖에 나가서는 더더욱 그러리라 본다. 타인과의 만남에서 말 한마디, 표정 하나도 평가의 대상으로 올라와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리라 본다. 결국 우리가 원만하게 산다는 것은 남에게 잘 보이는 과정이라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은 이야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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