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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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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명물
안동을 주시하라. 우리나라에서 전통이 가장 살아 숨 쉬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안동에 가면 캐치프레이즈가 ‘전통문화의 수도 안동’라고 내 건 모습을 볼 수 있다. 좋게 표현하면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좀 좋지 않게 표현한다면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넘쳐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지인들이 문상을 하러 온다. 그 장소에서 과거에는 상주가 곡을 하면서 문상객을 받았는데 아직까지도 그 곡이 살아있는 동네가 강릉과 안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곳이라 보면 될 것이다.
전통을 바탕으로 현재가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훌륭한 전통과 문화를 가진 자가 미래를 열어가는 것도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전통을 무조건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에다 연결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하여 전통의 가치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앞으로는 문화의 가치가 밥을 먹여주는 시대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한 그것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가치는 더 커진다고 본다.
일전 추석 연휴 때 안동에 다녀왔다. 그곳에 간 목적을 뚜렷하게 정립하고 간 것은 아니고 갈 곳을 찾다보니 그래도 그곳에 가치가 다른 곳 보다 좀 더 있지 않을까 싶어서 택한 곳이다. 그보다 더 끌린 요인은 그 당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가 있어서 그것 몇 푼을 아끼려고 택했는지도 모른다. 아주 좁쌀같은 생각이 그곳으로 향하게 된 결정적 요인 중에 하나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안동을 가기 전에 영주에 있는 유명한 사찰, 부석사에 들렀다. 건축양식의 독특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절이라 하는데 우리가 갔던 날도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동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탄생된 곳이다. 곳곳에 서원이 설치되면서 많은 유생들을 배출하였고 그 유생들이 중앙무대에 올라가 고위관직을 독점했던 역사적인 고장으로 알고 있다. 실제 안동에 가 보면 타 지역에 그리 많지 않은 서원들이 진짜로 많이 현존하는 곳으로 보여질 것이다. 어느 지역이던 한 두 개의 조그만 서원이 아닌 역사책에 기록이 될 정도의 굴직굴직한 서원은 죄다 안동에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많은 서원에서 배출한 유생이 과거를 급제하여 고급관리가 되고 그 관리가 낙향하여 인물을 키우는 그야말로 조선판 고급관료 양성소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관료의 양성소였던 안동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안동의 음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안동은 내륙 중에 내륙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 시대에 안동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다구경을 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다와는 거리가 먼 곳 중에 하나로 알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서해안보다는 동해안 쪽이 훨씬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안동에서 음식문화가 독특하게 발달했다는 것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은 문화 중에 중요한 한 축으로 등장하게 된다. 프랑스나 이태리, 영국, 중국 등이 왜 문화민족으로 등장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음식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으리라 본다. 역사의 깊이만큼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인류의 생존자체가 음식에서 시작하여 음식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음식은 인간의 생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하지만 그 음식에 대하여 높은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유교사상이 아닐까 싶다. 고상한 학문을 하는 사람이 그깟 먹는 음식에 대하여 왈가왈부한다는 자체가 경망스러웠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유교교리를 공부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 터인데 우리의 선조들은 음식에 관해서는 관대하지 않았다고 본다. 아니 선비들이 음식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으면 그 선비의 부인들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이 또한 선비들이 훼방을 놓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음식은 구전에서 구전으로 내려온 것이 대부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도 선비의 고장인 안동에는 한국을 대표로 하는 음식이 두 가지나 존재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전통문화가 있었기에 이런 음식도 개발될 수 있는 터전이 된지도 모른다. 문화라는 것은 하나가 발전하면 그 것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도 파생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본다. 이런 음식문화도 하루아침에 발생된 것은 아니라 본다.
안동은 그야말로 내륙의 도시이다. 과거 사대부들이 살아가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책을 많이 읽은 관계로 식견이 남달랐다고 본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고 맛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일반 백성들보다 더 컸으리라 본다. 당시에는 냉장고나 냉동창고가 없었던지라 음식을 보존하는 기술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해산물을 먹고는 싶으나 워낙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었던 관계로 저장을 할 방법이 마땅찮았으리라 본다. 그러나 해산물은 먹어야 겠고, 해서 나온 저장법이 염장법이 아닐까 싶다. 이 염장법이 가장 발달한 것이 젓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 젓갈은 원료의 형체가 아주 딴판으로 변하는 그야말로 화학적으로 변화를 거친 식품인지라 생생한 맛을 느끼는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형체를 그대로 살리면서 맛도 어느 정도 유지시킬 수 있는 재료가 고등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도 어린 시절에 소금에 진하게 절인 고등어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면 내륙지방에 많고도 많은 지방에서는 왜 안동간고등어 같은 음식이 나오지 않았느냐에 대한 반문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식견이 뛰어난 사대부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있었던 지역의 사람들이 찾아내거나 고안해 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또한 많은 사대부들이 많은 지역을 다니면서 경험한 음식문화를 현실화 시키는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간고등어가 아닐까 싶다. 고등어가 직접 생산되는 해변에서야 굳이 간고등어식으로 유통을 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나 장거리 이동을 요구하는 지역에서는 새로운 유통방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안동에서 결실이 맺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 본다.
다음으로 안동의 간판 요리가 안동찜닭이 아닐까 싶다. 강릉바닥에서도 찜닭을 먹어 봤지만 왜 안동이라는 접두어를 붙였을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안동에 가 본 결과 안동찜닭의 열풍은 가히 우리의 생각 정도를 넘을 정도로 그 지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동찜닭의 유래는 사대부집에서 나름대로 만들어 먹던 것이 일반 대중에게 전파되었다는 설과 안동 중앙시장에서 닭튀김과 다른 뭔가 새로운 닭 요리를 생각하다가 고안한 음식이라는 설도 있었다.
안동찜닭이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 요리계를 들썩였던 계기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에 오면서 이 요리를 먹은 후라고 한다. 음식도 누가 먹었느냐에 따라 유행을 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보지만 그 음식만이 가지는 매력이 더 우선시 되지 않을까 싶다. 안동찜닭은 예전에 우리가 먹던 닭도리탕에서 근원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기존의 닭도리탕에다 당면을 듬뿍 넣고 나름대로 개발한 소스를 가미하여 새로운 맛을 내게 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하였던 안동에서 이런 음식이 파생되었고 그 요리법이 전국적인 음식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안동의 음식뿌리가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본다. 경상도 음식은 강원도 사람들이 맛 본 견지에서 썩 매력적인 맛은 아니라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도 경험하였다. 아침 콩나물국 해장을 하면서 경상도 안동의 맛을 좀 보려고 했는데 여지없이 그 기대가 무산되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좀 더 맛깔스럽게 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문화가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전라도에 가서 먹은 음식은 무엇이던 제 맛이 났던 기억이 다시 오버렙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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