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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게 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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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20-08-11 11:13 댓글 0건 조회 7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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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저게 절이야
?

우리는 가끔 가다가 편견에 사로잡힌 모습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좋게 말하면 소신이나 자신의 철학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집과 자만에 차 있는 모습이라 봐야 할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이 전부인양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고방식의 다양하게 분화되어 사회가 더 건전해 질 수 있다는 일말에 장점도 있긴 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경험과 연륜을 쌓은 사람도 자신의 편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한창 크는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나이 먹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아이들은 그저 철딱서니 없는 존재 정도로 보일 것이다.

커 가면서 무수히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 나가지 않고는 인간되기 어렵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일전에 모 처에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강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원주 쪽에서 발생한 일인데 맥락은 이렇다.

원주 향교가 있는 동네에 사는 어린 초등학교 아이들인데 우연찮게 이 건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열이면 열 모두 그 건물이 절로 알고 있더란 이야기다.

 

참고로 원주 향교 정문은 평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돌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내부를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향교 담장을 등하교 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굳이 그 안에 들어가 볼 이유가 없었을 것임으로 그 아이들은 자신이 판단하는 잣대로 그 공간을 절간으로 인식한 것이다.

물론 향교 입구에는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한자로 기록되어 있어 이런 언어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은 당연히 절의 팻말 정도로 인식했으리라 본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는 그 공간이 향교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부모 입장으로 봤을 때에는 그 공간이 향교인데 굳이 아이에게 얘야, 저 건물이 공자님을 모셔 놓은 사당이란다.”라고 이야기 해 줄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향교인데 그것을 굳이 아이에게 설명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이 또한 자신의 부모에게 엄마, 저 건물이 절이야?”라고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 자신들도 당연히 절로 알고 있는데 굳이 부모에게 새삼스럽게 저게 무슨 건물이냐 라고 물어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 본다.

 

향교를 절로 알고 있는 아니도 어느 때가 되면 그게 절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리라 본다.

그걸 향교로 인식할 때까지는 그 공간이 절간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실제로 향교와 절은 거리가 좀 먼 관계이지만 생긴 모습이 비슷하기에 아이들은 당연히 절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본 결과가 향교를 절로 보이는 현상이 발생된 것이다.

 

향교를 절로 본다 해서 아이들의 교육이 제대로 안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사물을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잣대에 오류가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외관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향교를 절로 오인하는 경우는 그 오류가 좀 지나친 감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원주 향교 근처에서 살아가면서 그 공간을 절로 오인하는 아이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진리이자 법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원주향교 근처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들처럼 향교를 절로 알고 살아가는 것을 그저 순진하다고만 인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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