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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섣달 긴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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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g love 작성일 2016-01-10 22:47 댓글 0건 조회 1,4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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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섣달 긴긴밤 하면 몇 가지 생각나는게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근심으로 지새우는 어머님 마음이 먼저 떠 오른다.

자식걱정에 늘 잠 못 이루는 부모의 마음을 노래한 것인데 밤의 길이가 더 길어지면서 걱정의 강도가 높아짐을 노래한 것이다.

노래의 가사가 가슴으로 더 가까이 오는 것은 나이가 점점 들어간다는 증좌가 아닐까 싶다.

중년을 지나고 보니 부모걱정에 자식걱정까지 겹쳐지면서 걱정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해짐을 느낄 수 있다.

밤이 긴 만큼 걱정의 시간도 길어지는 시기가 바로 동지섣달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으로 우리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이 밤에 간식이 아닐까 싶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 저녁을 먹고 긴 밤을 지내자면 자연스럽게 배가 고프게끔 돼 있었다.

지난날 시내에 사는 부루조아지 계급(현대의 중산층)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집 같은 경우는 찹쌀떡이나 맹감떡 정도를 사 먹었겠지만 촌놈들은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기껏해야 생고구마 아니면 무 정도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화롯불이라도 있었으면 고구마를 구어라도 먹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생고구마를 깎아서 먹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당시에 고구마가 생으로 먹어도 그럭저럭 잘 넘어 갔다는 것이다.

요즘에 밤 고구마는 너무 딲딱하여 구어 먹거나 삶아 먹어야 하지만 당시에 재래종 고구마는 생으로 먹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흑백텔레비젼이라도 있는 집은 그래도 편안하게 집에서 드라마라도 보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눈총을 받아가면서 티비가 있는 집에 가서 본이 아니게 민주리를 댔던 기억이 난다.

집 구조 또한 겨울을 나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초가집에 흙벽으로 만든 시골집에서 겨울을 나기가 만만찮았다.

방한이란 개념조차 크게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껏해야 문풍지 정도를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초저녁에는 불을 땐지라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으나 새벽녘이 되면 콧등이 얼 정도로 추웠다.

이불도 변변히 없었음은 물론이고 내복도 지금처럼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집집마다 넘쳐나는 것은 애들 뿐이었다.

보통 한 집에 적게는 너 댓명에 많게는 여나무명까지 있는 집들도 있었다.

이들이 한 겨울을 넘기자면 식량에서 땔깜, 이불, 옷 등에서 진짜 만만찮았다고 본다.

당시에 애를 키웠던 바로 우리 선대들은 이밥에 고깃국 한 그릇 제대로 못 먹고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저승으로 간 사람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고 보기에는 너무 억울한 일인 아닌가.

어찌하였던 왕년에 동지섣달은 추억도 많았겠지만 넘기기가 너무 어려웠던 시절로 기억된다.

글을 쓰다보니 또렷하게 옛날 생각이 더 난다.

춥기는 왜 그리 춥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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