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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04 – ‘붉은 깃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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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18-08-13 17:18 댓글 4건 조회 9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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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깃발법.

읽는 것만으로도 습관적으로 섬뜩해 온다. 살아오는 과정에서 많이 희석되고 웬만큼 가치판단이 정립되기는 했지만 태어나면서 부터 세뇌된 반공의식에 대한 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붉은 깃발은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붉은 깃발'이 아니다. 이른바 '적기조례'라고도 하는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세계 최초로 증기자동차를 상용화한 나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산업을 꽃피운 나라는 독일과 미국이다. 영국은 개발만 했지 정작 자동차산업의 과실을 따먹은 나라는 독일과 미국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배경에 '붉은 깃발법'이 등장한다  

1820년대 마차만 있던 시대에 승객 28명을 태우고 시속 30로 런던과 인근도시를 잇는 증기자동차 노선버스가 생겼다. 그러자 불안을 느낀 마부들이 자동차의 속도를 규제하라고 왕실에 요구를 한다. 1865년 빅토리아 여왕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붉은 깃발법을 선포했는데 그 내용은 어처구니없게도 차는 마차보다 느리게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 시속 30이상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6.4이내로 달리도록 제한했으며 그 자동차 앞에는 붉은 깃발을 든 조수가 말보다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통제를 한 것이다 

영국이 자국내 특정집단의 이익을 쫒아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의 서행을 강제할 때 한참 후발주자인 독일은 자동차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후, 그리고 지금도 자동차에 관한한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영국은 독일을 앞서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주변에는 붉은 깃발만 안 들었지 속도를 내려는 자동차 앞을 가로막고 6.4km를 넘지 마라는 사람들이 있다진보가 능사는 아니지만 실패한 보수보다는 실패한 진보가 인류문명에 더 큰 지평을 열어왔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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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진보와 보수가 나란히 가는 양 수레바퀴였으면 좋겠다고 하니 
외발 자전거, 오토바이, 손수레도 잘만 간다고는 합디다.ㅎ

"붉은 깃발 법"이라고 하여 진짜 놀랐습니다.

초중고 학창시절과 사회의 직장에서까지
반공 웅변대회, 승공 학술토론대회, 예비군 창설 1주년 웅변대회 등 
기회마다 출전 경험이 있습니다.
원고 달달 외우는 건 이골이 난 것만큼이나 공산주의는 싫습니다.
조등 2년(8세) 때 6,25를 실제로 목격했고..

진보가 싫은 게 아니라 종북좌파가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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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진보와 보수 양날개로 날아야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정의롭고 진정한 민주를 지향하는 건강한 진보적인 보수의 날개가 다시 돋아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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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지금도 왕이 존재하는 보수성 강한 나라 영국의 GDP는 세계 5위
여전히 경제대국이지요
영국의 붉은 깃발이 영국을 말아먹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요
미사일(V1, V2 등)을 제일 먼저 개발한 나라가 독일이지만
지금도 어떻습니까
미국과 러시아에 한참 처졌지만 독일 역시 여전히 GDP 세계 4위를
지키고 있는 경제대국이지요.
이렇듯
영국의 붉은 깃발 하나를 예로들어 보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맹인모상(盲人摸象)이 아닐지 염려되네요 
그리고 실패한 보수와 실패한 진보가 무엇이 다른가요
진보의 착각과 실패가 불러들인 역사적 재앙을 무슨 재주로
다 열거하랴 싶구요.
좌익의 실체를 기만하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한 것이 한국의 진보가 아닐지
늘 의심하게 되더군요
나만의 기우일지 모르겠으나 진보라 자처하는 그 가짜의 착각과 실패가
대한민국이 감당키 어려운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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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제가 예를 잘못 들어 공연한 불을 지폈습니다.
세대차에서 오는 다름이기도 하고 사회를 보는 시각차이기도 하겠지요.
보수나 진보가 이념이나 사상에 국한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보혁의 갈등은 어느 곳에서나 어느 세대에나 있어왔고 사회 다방면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위한 몸부림인지 모릅니다. 
보혁의 갈등을 해소시켜 나가다 보면 전보다 훨씬 진화되고 성숙된 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