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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참 이해 못할 일이 일어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몇해전에 아내와 시골길을 걷고 있었는데 마침 마늘밭을 지나가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마늘밭을 그날따라 거기서 걸음이 멈추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마늘을 수확할 때는 안 되었고 마늘쫑이 길다랗게 자라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마늘쫑이 먹고싶다는 마음이 아주 간절히 드는 것이었다.
마치 갈증이 나서 물을 찾는 것처럼.
밭주인의 양해를 구하여 마늘쫑 세 개를 얻었다.
집 까지 가지고 와서 장에 찍어 먹어야 했지만 그냥 생걸로 우적우적 먹고 싶었다.
입안이 아릴거라고 예상을 했으면서도 세 개씩이나 한자리에서 물도 없이 먹고 말았다.
먹고 난후 입안의 아려움은 뒷전이고 요새 유행어 2%의 부족함이 채워진 것 같았다.
“나 혹시 곰의 후예인지도 몰라” 집사람보고 그리 얘기 하면서 웃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 못할 상황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마늘 밭을 지나가면 의례껏 마늘쫑이 먹고 싶어지곤 했다.
회사 다닐 때 3교대 근무를 했었다.
오후 4시부터 밤12시까지 저녁근무를 하고 그 다음날은 오후 3시까지 여유시간이 있어
자동차를 몰고 가까운지역의 여행을 자주하곤 했다.
어느날은 고성 거진을 거쳐 진부령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잡고 떠났는데
거진항에 들렀더니 마른 오징어를 굽고있는 냄새가 사람을 붙잡고 말았다.
분이 폴폴 나는 마른 오징어를 불에 약간 태우듯이 가게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구워낸다.
불에 구운 오징어는 그 탄내에다 먹을 때 흘러나오는 국물이 어우러져 혀를 감고 넘길땐
그 어떤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치 맛이 좋다.
짭쪼르달큰한맛. 그 맛에 유혹되어 한축(마른오징어 20마리)을 사서 진부령을 넘어 오면서
몽땅 먹었으니 나도 어지간한 오징어광이다.
이밥에 고기.
그건 북한의 김일성이 주민들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지만
어린시절 우리들에게도 요원한 꿈이었다.
이밥에 고기가 우리형제의 뇌리에 박혀버린건 한 영화때문이었다.
제목은 잊어버려 알수 없으나 6.25 전쟁이 주제였는데
전쟁전에는 아주 잘살던 부잣집 아이가 전쟁중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부랑아로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우린 부랑아의 고생은 뒷전이었고 전쟁전에 부모와 함께 밥을 먹는 장면만 들어 왔다.
하얀 입쌀밥에 구운 양념고기를 얹어 먹던 장면이 이때까지 잊혀지지 않는걸 보면
그때 그게 얼마나 먹고싶었던 것이었을까 가늠할수 있다.
작년에 외지에서 근무하는 둘째 아이가 집에 와서 고기를 사 드린다고 식당엘 간 적이 있었다.
돼지불고기 집이었다. 양념 불고기를 구워서 먹는데 밥도 같이 갖다 달라고 했다.
보통은 고기를 먹고 밥과 장국은 나중에 먹지만 그 날은 그러고 싶었다.
그날, 어린시절의 영화보던날이 떠 올라 나도 그리 해보고 싶었다.
한숫갈 밥을 떠보니 차진감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이밥 한숫갈 떠서 약간 태워진 듯 구워낸 양념고기를 얹고는 입도 크게 벌려 한입 먹는 맛.
그 감흥에 취해 밥 한공기를 그렇게 다 먹었다.
꿈이 이루어진 듯 했다.
맛은 재료가 갖는 특이함도 있겠지만
몸에서 요구하는대로 먹는게 진정한 맛의 원천이 아닐까?
짭쪼르달큰한 구운 오징어
아린 듯 여린 생마늘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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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밥맛없으면 입맛으로 살랬지요?
입맛 떨어지고 보니, 정말 죽을 맛입디다.
5년 전 밥맛 입맛 다 잃고,
꼭 1녕동안 병(당뇨)치례 중
그렇게 싫어하던 도토리묵 먹기 1년만에
거짓말같이 밥맛 돌아섰지요.ㅎ^^
https://blog.naver.com/rang5441/220152428147
kimyki님의 댓글
kimyki 작성일
수술 후 80여일이 넘도록 음식을 직접 먹지 못했던 나에게는 병원의 식사시간은 고문에 가까운 고통을
인내해야만했지요
시원한 사이다 한 잔 마셔봤으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은 갈증감도 만만치 않았지만
마른 오징어의 찝찔한 맛과 보신탕이나 감자탕의 얼큰한 맛이 왜 그리 그립던지요
마른 오징어 한축을 다먹고도 오늘 날까지 살아남은 후배님이야말로 이 시대를 대표할만한 진정한 먹방이 아닐지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