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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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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라는 말처럼 인간의 영혼을 자유스럽게 하는 표현은 없으리라 본다. 허구 많은 표현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고안된 최고의 표현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 다음으로 맘에 쏙 닿는 표현 중 하나가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제시된 표현 둘 다 인간의 자의적인 판단을 최대한 존중해 주겠다는 인본주의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어찌보면 우리나라가 유교적인 사상에 젖어서 모든 사리판단이 너무 엄격하고 획일화 된 부분에 고착된 듯 싶지만 위의 두 표현을 보면서 그래도 숨통을 좀 열어 놓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인간에게는 만족이라는 선물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불만이라는 고약한 선물도 동시에 존재하리라 본다. 만족에 초점을 맞추면 그 방식이나 대상을 좇으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사는 불만은 가급적 제거하고 만족은 더더욱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꾸려가고 있다고 본다. 불만을 잘 제거하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만 굳이 불만을 감싸 안고 살아갈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불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이런 과제가 우리에게 던져졌을 때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는 가는 더더욱 큰 난제일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푸는데 급급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일이 발생된 후에 처리를 어떻게 잘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 살펴보면 문제가 발생된 후 수습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발생된 문제에 대하여 원만하게 수습을 잘 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부각되는 것도 현실인 것이다.
절이 싫다는 것은 절에 대한 불만이 암암리에 차곡차곡 쌓였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절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더 좋은 공간이라는 묵시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원래는 절이 좋았었는데 어떤 다양한 이유로 인하여 절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커 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본다. 그렇다면 왜 절이 싫어졌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싫은 절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절이 싫어진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원인을 안다면 그것을 치료하면 될 것이다. 원인이라는 것의 시발점은 조그마한 먼지 같은 데서 출발한다고 본다. 처음부터 거창한 이유로 절이 싫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지나 티끌 같은 문제점이 발생되었을 때 조처를 잘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나 그것이 커졌을 때 수습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나 너나 현실에 처한 절이 싫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고 본다. 당장 보따리를 싸고 싶어도 마땅히 갈 데가 없기에 그대로 눌러 붙어 있는 것이다. 보따리를 싸서 절을 떠나는 사람들을 부러운 대상으로 올려놓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남들은 저렇게 보따리를 잘 싸서 가볍게 절을 떠나가는데 내 발걸음은 누가 잡기에 이렇게 떼기 힘든 것인가에 대해서 한탄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한 번 해병대에 들어오면 영원한 해병대이듯이 한번 발을 들여놓은 절을 떠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을 좀 바꿔보자. 절이 싫어서 떠나는 중이 다시 리턴하여 그 절로 다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자. 쉽지도 않겠지만 여간 큰 뚝심이나 각오를 가지지 않고는 힘들이라 본다. 혹시 절 떠난 다음 그야말로 갈 데가 없어서 다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이는 너무 처량한 일이라는 것 쯤은 알고 행동하자 이 말씀이다. 절 떠나봐야 오갈 데가 없는 사람은 그 절이 싫다하여도 꾹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는 리턴하여 절로 다시 들어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절 생활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어떻게 마음가짐을 고쳐먹어야 할 것이라는 것 쯤은 판단해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절에서 보따리를 싸는 사람은 어디에 가서 환영을 받을 것인가를 단단히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대목이 절을 함부로 박찰 수 없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본다.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절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용이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여러 각도로 살펴보았다. 절을 떠난다는 것은 내 자신의 저울에서 절보다 더 나은 곳으로 추가 기우러졌다고 본다. 추가 팽팽할수록 고민과 망설임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이 순간에도 이미 절을 떠나서 속 시원하게 사는 사람, 절이 싫어서 떠나는 사람,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으나 망설이는 사람, 그냥 절에 눌러 붙어 있는 사람, 절 생활이 아주 만족스러운 사람 등이 있을 것이다. 떠나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인가는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다. 글 말미를 엮다보니 세상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일이 절 떠나는 일이 아닐까가 싶다. 절을 미련없이 떠나갈 수 있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펀득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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