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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이야기(175) .. 황진이의 호객시조(청산리 벽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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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양 작성일 2016-10-04 08:01 댓글 4건 조회 1,1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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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도(松都)는 개성(開城)의 옛 이름이다.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는 옛말이 전하니
     기생 황진이(黃眞伊, 미상)와 박연폭포(朴淵瀑布) 그리고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
     (1489~1546) 대유학자를 일컬음이다. 花潭이 眞伊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해서다.

     옛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인물고(朝鮮人物考)에 보면 삼절(三絶), 사절(四絶)
     이라는 찬사가 붙어 있는데 시서화(詩書畵)에 능하면 三絶,  여기에 음률(音律)까지
     능하면 四絶이라 하였으니 黃眞伊는 미(美)까지 갖추었으니 오절(五絶)이라 하겠다.

      黃眞伊의 시조(時調)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靑山裡碧溪水  莫誇易移去)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一到滄海不復還)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明月滿空山  暫休且去若何)

     청산(靑山)은 불변의 자연이고 벽계(碧溪)의 물은 흘러가는 인생을 의미한다.
     春草年年綠이나 王孫歸不歸, 봄풀은 매년 다시 돋아 나지만 사람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듯, 벽계의 물도 바다에 이르면 다시오지 못하니 明月(황진이 자신)이
     공산(空山, 빈 산은 임자없는 자신을 비유)에 가득하니 쉬어가라고 유혹한다.
     
     분명 이 시는 문학적 가치를 지닌 호객행위(呼客行爲)를 하는 내용이라 할 것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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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설령 호객행위라 해도
그때는 식품위생법이나 경범죄처벌법,
그리고 요즘 생긴 직무관련 운운하는
김영란법 때문에 생긴 
란파라치도 없었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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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양님의 댓글

세양 작성일

당시 유학(儒學)이 지배하던 시대,  사모관대의 관복을 입고 팔자걸음을 걸으면서
위엄을 보이지만 지방의 관아마다 관기(官妓)를 두었으니 당시의 사회상을 뭐라 설명할꼬?
허긴 官妓로 하여금 사또님 수청을 들게 하였으니 평민의 가족들이 무사하였겠지.
남원의 변학도같은 사람은 별개고.  모든 것(公娼)을 폐지한 지금이 오히려 눈감고 "아옹"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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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님의 댓글

바람소리 작성일

가정하여 이 놈이 당시에 태어나 진이를 만났다면 지체 없이 홀켜 압록강을 건너 도주했을 것.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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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양님의 댓글의 댓글

세양 작성일

백호 임제(白湖 林悌)가 서북도 병마평사에 임명되어 부임하러 가는 길에
황진이의 묘에 들려 술 한 자늘 부어 놓고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생략>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 하고 조문을 하고 떠났는데 그것을 빌미로
벼슬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 林悌는 개의치 않았다니 황진이의 가치가 그러만
하다고 보여지네요. 중국땅에서 황진이와 시문을 주고받을 바람소리님을 상상하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