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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治療)와 치유(治癒)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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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오락 작성일 2019-03-03 06:07 댓글 2건 조회 7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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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治療)와 치유(治癒) 사이

 내가 노년의 삶에 활력을 얻기 위해 학생으로 서울 치유 대학원 대학교(석사과정)에 다니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닫고 배운다. 사람은 그래서 죽는 날 까지 배워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전도서를 말년에 저술한 솔로몬 왕은 해아래 새것이 없고,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 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20세기 석학들도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다. 배움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먼 길을 가는 것이다. 행여나 나는 더 배울 것이 없다 라고  말한다면 이미 삶의 겸허함을 잃어버린 것이다' 라고 했다. 겸손해야 (intellectual humility)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수 있다

 요즘은 대학에서 4년동안 배운 지식으로는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 갈 수 없어서 국가는 평생교육법을 제정하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정규 과정을 놓친 사람도 검정고시를 통하여 대학에 갈수 있고, 배울 의지만 있으면 온라인을 통하여 석사 과정까지 가능한 시대이다.

 나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로 길을 걸으며 목회도움을 주는 주변 학문을 공부하다 보니 사회복지, 교육학, 문학, 심리학, 등을 공부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지금까지 정진하여 왔다. 목회초년에는 성경한권으로 이 세상 모든 학문이 집대성 된 것이라고 생각 했다. 목회상담학, 설교학, 조직신학, 성서신학, 종교철학, 교회교육, 현대신학, 비교종교학, 구약과 신약, 교회사, 고고학, 성서지리(현장답사 성지순례) 등 끝없는 신학과 목회분야에서 학문이 펼처져 있었다. 그러나 세계관이 다른 타 종교연구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 세계의 경제학, 인문학, 사회학, 심리학, 고전 문학 등을 공부하고 요즘은 심리상담 심리치료에 몰두하고 있다.

 사람이 병(病)들면 육신적 치료(治療)는 의사에게 맡겨야 하지만, 심령이 병들면 내면 세계, 어린시절 무의식(無意識)의 세계로부터 점검해 봐야 된다. 이것이 바로 치유(治癒)이다. 그 사람의 정체를 알자면 부모 양가 원가족의 3대에 이르러 살아온 가족내력(가계도)을 알아야 그 한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한 맺친 원(怨)한(恨)관계가 많아 그것이 오랜 세월에 쌓여 가슴앓이 화병(火病)으로 맺혀 있다. 이것을 풀어 내지 않고 겉치레 병원 치료로는 근본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그래서 약과 주사로 임시 처방된 치료는 잠시는 치료 된 것 같은데 또 재발하곤 한다. 식이요법이나 인체 정화 치료 요법에서는 질병(疾病)과 질환(疾患)을 구분하였다.

 질병은 의사의 도움으로 고처야 하는 병을 말하고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 세균, 박테리아 등 기생충이 원인인 경우) 질환(疾患)은 내 몸 스스로 치유해야 하는 방법이다. 비만, 고지혈, 고혈압, 당뇨, 협심증, 심근경색, 뇌경색, 척추 협착증, 갑상선기능, 우울증, 조울증, 류머티스 같은 난치병, 만성질환, 대사질환 등이 이에 속한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심령의 치유를 겸하여야 한다. ‘기분이 좋으면 앓던 병도 낫는다’는 말이 있듯이 심령이 즐거우면 면역력이 강화 된다. 조선시대 의약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세조는 손수 ‘의약론’을 전국에 퍼뜨림으로서 의료개혁을 시도했었는데, 의원의 우열을 심의(心醫), 식의 (食醫), 약의(樂醫)로 구분 했다. 약방문에 의지하는 약의(樂醫)보다, 식이(食餌)를 잘 다루는 식의(食醫)가 낫고, 식의보다는 심의(心醫)가 으뜸이라고 하였다. 심의란 환자로 하여금 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의원이라고 말한다.

 인간 속사람 내면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질병의 근본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상담소를 찾아 상담함으로 시작 된다. (healing and counseling) 이것은 장,단기 심리치료 기간을 정하여놓고 상담자와 내담자가 만나 심령을 치유 받아야 병의 깊은 뿌리로 부터 발본색원(拔本 塞源) 할 수 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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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의지의 한계로 온전한 심의(心醫)를 구현할 수 없기에 우리는 절대자에 대한 신앙에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믿음으로 그나마 초연히 삶을 살아간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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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락님의 댓글

해오락 작성일

김윤기 선배님의 신앙심에 감사 ,찬양 드립니다. 항상 강건 하소서 .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