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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10 - ‘오면 반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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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18-09-27 10:22 댓글 4건 조회 6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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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솜 같은 희디 흰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은 에메랄드처럼 푸르고
차창을 열라치면 산들거리며 부는 가을바람은 형언조차 하기 어렵도록 청량하며
보름 달빛은 지나침을 피하느라 옅은 구름 속에서 그 존재감을 보여주는 8월 한가위.

어느 하나 나무랄 것 없을 만큼 이번 추석의 날씨는 청명하고 겸허했으며, 마주하는 얼굴들 마다에는 그럴 수 없이 충만함과 행복감이 묻어난다.  

그토록 학수고대했던 손주녀석은 할아버지집에 오자마자 정결하게 청소를 해 놓은 거실과 방들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온통 난장판을 만들며 설치더니 오는 길이 피곤했던지 이내 잠속에 빠져든다.

집이라 봐야 온통 아파트 숲속 중간층 새장같이 막힌 공간이지만 그곳에도 창을 통해 한가위 달빛과 가을바람이 스미고, 아래층으로 부터 전을 부치는 들기름 냄새에 왁자지껄 송편을 빚는 소란스러움이 오늘만큼은 정겹게만 여겨지는 명절,      

평상시 같으면 몇 번이고 짜증을 부렸을 위층 아이의 콩콩거리며 뛰는 소리가 그 옛날 추석에 입을 아버지의 무명 바지저고리를 손질하시느라 두드리던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로 들리는 오늘, 그리고 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마음 넉넉한 한가위.  

23일 동안 손주의 갑질에 졸지에 을이 되어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며 온갖 시늉을 다 해주다가 파김치가 되어버려 이제는 꾀병을 부려서라도 앓아누워야겠다고 할 즈음 명절은 끝나고, 아이들은 각자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며느리가 눈치라도 챌까 못내 아쉬운 표정을 과감하게 연출하고, 몇 번이고 과장되게 손을 흔들면서 마음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나 이제 다시 갑이다!’  

, 이래서 선배 할배들이 그랬구나!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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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이번엔 신발하고  할아버지하고 놀아줬지만,
다음번엔 스마트폰이나 더블릿 피씨 들고 '혼자서도 잘 놀아요' 할 거고요
TV 유튜브 채널권도 완전히 접수할 겁니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손주~
슬슬 '짝사랑'을 체험하게 될겁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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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아, 그렇습니까?
다음번에 내려오면 진짜 몸살이 나도록 놀아줘야 겠습니다. ㅋㅋ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국 조언 고맙습니다.
명절은 잘 보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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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다시 갑이라구요
대단합니다
영감이 할멈을 제치고 갑이라 하시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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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아니쿠 선배님.
마눌님은 그 급이 다릅니다.
지상의 갑을병정급이 아닙니다. 
천상천하급이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