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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 강원도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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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g love 작성일 2016-05-27 22:32 댓글 1건 조회 1,0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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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가 아주 옛날 몇몇 왕들이 머물렀거나 들른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요 근거지가 아닌 변방의 역할 정도 밖에 못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군요.

아니 신라 말 궁예가 철원에서 나라를 아예 세웠던 적은 있었으나 이 사람은 왕으로 보기에는 좀 그렇다고 봅니다.

그래도 국가의 체계를 갖추고 왕으로서의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 기거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구전으로 전해온 바에 고려 말에 공양왕, 단종이 영월에 귀양을 왔던 일, 조선조에 세조가 오대산에 들렀던 일 정도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도로가 발달하고 이동수단이 발달치 않았던 시절에 왕이 장거리를 행차한다는 쉽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그러다보니 강원도 같이 변방인 곳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오고 싶어도 올 곳이 못 되었으리라 봅니다.

강원도를 찾았던 왕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처지가 딱한 경우 할 수 없이 찾은 곳으로 인식되어 지고 있습니다.


원주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지점에 귀래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름만 들었을 경우 좀 특이하다 싶었는데 이 동네의 명칭이 신라 말부터 유래가 되었다는 설을 엊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일전에 그곳으로 우연치 않게 갔다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귀래에서 한동안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라 말기에 고려와 맞짱을 뜨면서 나라를 지키려하는 정책을 마다하고 조용히 고려에게 나라를 넘기는 것으로 결정하였답니다.

이유는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면 애꿎은 백성들을 전쟁터로 끌려나와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함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내린 결단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면에는 고려와 상대가 되지 않음을 직시하고 알아서 꼬리를 내린 판단이 될 수 도 있었겠지만 민초를 아끼는 마음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경순왕이 신라에서 고려(현재 개성이죠.)로 들어가면서 머물렀던 곳이 귀래인데 여기서 암자와 절을 세우면서 불국토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귀래 주변에 크고 작은 절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산재해 있음이 이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곳이 경천묘인데 조선조 영조가 중건을 한 것을 최근에 원주시에서 단장을 새로이 하고 지방문화재로 관리를 하고 있답니다.

천년이란 세월은 지나갔지만 당시의 역사를 곱십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으나 국가의 존망을 손에 쥐고 있던 왕이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터를 닦고 살았다는데서 자부심 보다는 비애, 처량함이 더 강하게 옴은 느꼈습니다.

원주의 변방, 귀래의 현 모습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지만 과거에는 왕이 기거할 정도로 특별난 곳이 었었습니다.

귀래 -귀한 사람이 오는- 뭐 그런 뜻이라 합니다.

혹시 원주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면 귀래에서 빠져서 신라 말 경순왕이 머물렀던 곳에서 당시와의 공기는 다르지만 같은 위치에서 경순왕과 마음의 손을 잡아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도로도 아주 좋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동문 여러분도 경순왕을 한 번 만나보세요.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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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님의 댓글

소리 작성일

경순왕의 왕릉은 파주에 있더군요..
서러벌에서 개경으로 가다가 중간지점에서 사망한것인지 모르겠네요..
말이 왕릉이지 아주 초라하고 어느 정승릉보다 못하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