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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㉚ - “노자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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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는 BC500년을 전후한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로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전의 사람입니다. 성과 이름은 이이(李耳)로 강릉이 자랑하는 성리학자 율곡 이이(李珥)와는 이름자에 변(珥)만 다릅니다.
그가 선채 일필휘지로 썼다고 전해지는 도덕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다가보면 2500년 전의 초나라의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 이토록 닮았을까 하고 찬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조정이나 국가나 올바른 길을 간다면 모두가 편안할 터인데 온갖 거짓된 술수로 사회를 어지럽게 해서 백성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바른 지적이나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제거하며, 법을 집행하는데 있어 힘없는 사람에게는 가혹하고 저희끼리는 관대하다. 그런데도 다들 먹고 마심에는 끝없이 사치스럽고, 돈은 몇몇 소수의 사람에게만 몰려 나머지는 백성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구나. 이것이 바로 도적놈의 세상이며 어찌 사람이 사는 길이라 할 수 있으랴." 당시 시대의 잘못된 정치에 대해 노자는 이렇게 질타(叱咤)를 합니다.
도덕경 중에서 특별히 기억되는 자귀 중에는 企者不立 跨者不行(기자불립 과자불행)이라는 자귀가 있습니다. "발꿈치를 들고 서 있으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가랭이를 크게 벌리고 걸어서는 오래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마침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선량(?)들이 겉으로는 자성이니 뭐니 하지만 속으로는 당선증을 받고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는 기간입니다. 이번 총선에 당선된 이들 중에는 양심도 없는 초보 인공지능에 인공관절까지 끼웠는지 발꿈치 들고 가랑이를 벌리고 걷는 인물들이 꽤 여럿 눈에 띱니다.
후진적 정치에 대한 국민혐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이 결정한 법률에 의해 국가의 질서에 억지로 동참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정치는 국가경영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 프레임이며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우리의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강변 낚시터의 버드나무는 저마다 연두색잎들을 피워내고 있지만 왕소군이 지은 春來不似春이라는 싯귀가 뇌리에 떠오르는 봄인듯 아닌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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