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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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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12-26 08:21 댓글 0건 조회 8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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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한 죽음


오늘 아침 뉴스에 태국에 있는 모 골프장에서 한국인 두 명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다른 카트와 충돌하는 사고로 인하여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사람이 살다가 죽는 과정도 다양화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지금까지 태어나 죽지 않은 자 한 사람도 없다는 게 정설이다.

 동방삭도 삼천갑자를 살다가 결국은 이승을 하직할 수 밖에 없었다.

천하 없는 힘을 가진 자도 죽음 앞에서는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해 준 사례라 본다.

 

아침부터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억울한 죽음인가가 머릿속을 스친다.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왜 그런 소식이 더 강하에 머릿속을 차지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나의 두뇌는 다른 소식은 다 접고 그 뉴스만 더 강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하여 자유스러울 수 없지만 그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억울한 죽음이 있으면 선한 죽음도 있으리라 보는데 유사 이래 선한 죽음은 거의 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공동묘지에 가서 이렇게 외쳐보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이 많은 무덤 속에 억울하게 죽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죽지 않은 자 한 사람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아무리 행복하게 살다가 저승으로 간 사람도 그 내막에 들어가 그 죽음의 과정을 들여다 보면 불만이 나올 것이다.

선한 죽음, 원만한 죽음, 깔끔한 죽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 인간사가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아무리 미화한다 하여도 죽음이란 자체는 별로 호감이 가는 과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죽음의 유형이 지금처럼 복잡 다사다난하지 않았다.

죽음의 유형도 사고사 보다는 병사나 급사가 많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병에 걸리면 그냥 죽는다고 보면 되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맹장염이 걸리면 99%는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맹장은 큰 병 축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게 처치가 되는 세상에 온 것이다.

과거의 죽음과 현대판 죽음의 양상은 분명히 다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죽음 유형은 그야 말로 다양하기 그지 없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로 인하여 저승에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죽음의 과정 중에서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억울한 죽음일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알면 그래도 덜 억울하게 죽을 수 있는 길을 찾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눈만 뜨면 죽음에 관한 뉴스들이 메인으로 떠오른다.

이렇게 많고 다양하게 떠오르는 죽음은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죽음의 차원을 넘어선 이유로 인하여 발생되는 것이 대부분이라 본다.

어떻게 하면 구질구질하게 죽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죽음도 뜻대로 조정이 안 되는 만큼 억울한 죽음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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