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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20 – ‘食 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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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18-12-05 10:34 댓글 3건 조회 1,1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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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한 연구원의 흉계(?)에 휘말려 잘못된 오랜 습성을 고치는 연구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생략과 절제, 단순성의 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프로그램 중 한가지로 인간의 5(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 중 한 가지씩 미션을 배정받아 생활 속에 접목하는 실험에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금욕?, 마음속으로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라는 셀프 비아냥도 했지만 한번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다섯 가지 미션 중 야속하게도 제비뽑기를 통해 저에게 주어진 미션은 다름 아닌 밀가루음식 열흘간 끊기다  

이 밀가루 음식을 열흘만 끊으면 툭 튀어나온 배가 눈에 띄도록 들어간다는데, 뱃살도 줄이고 성공보수까지 일석이조의 기대감에 눈이 멀었던가 실패하면 실험비를 배로 변상해야 하는 관계로 재고해보라는 수차례의 권유를 물리치고 큰 소리로 ‘Yes sir!’를 외쳤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인간의 삶 중에서 먹는 즐거움을 그 어떤 즐거움에 더 비하겠는가. 거실에서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가을 야구를 보면서 마시는 생맥주 한잔과 은행잎처럼 노랗게 잘 익은 치킨 다리, 낙엽 우수수 떨어진 공원이 보이는 카페에서 절친과 느긋하게 즐기는 향기로운 커피 한잔, 흠뻑 땀 흘리고 난 후 산정에서 후후 불어가며 취하는 따끈한 컵라면, 어느 뜨겁던 여름날 이름난 맛집에서 먹었던 냉면의 그 시원 알콤했던 뒷맛, 그 중에서도 유독 좋아해 결혼식에 가면 두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우는 소박한 잔치국수는 익은 가을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처럼 식도락의 크라이막스를 치닫는다.

각설하고, 실험에 동참한지 겨우 4일째, 가을야구 5차전이 있던 날 나는 아내가 모처럼 솜씨를 발휘해 야참으로 끓여내 온 핸드메이드 칼국수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서야 후회를 했지만 이미 배는 물 건너갔다  

,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못 먹고 살아온 것도 아닌데... 오감(五感)의 세포들이 일순간 도미노현상처럼 동물적으로 반응하면서 나는 성공보수 대신 실험비를 곱빼기로 물어내야하는 일생일대(?)의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이다  

五慾, 그 중에서 가장 절제하기 어렵다는 食慾, 몸에 해롭다고 애써 참기보다는 균형있게 조절하면서 즐기는 것이 맛있는 인생이라는 자위로 물어내야 할 실험비를 보상받기로 했다.

하루 삼시세끼를 꼬박 입맛따라 챙겨먹는 인생은 어쩌면 食客의 길인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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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재밌습니다.
칼국수에 무너질만합니다.
잔치국수 두 그릇, 여기까지는 똑같은데 난 아래 뱃살은 전혀 없으니
밀가루와 뱃살은 전혀 별개인듯합니다.
최근 아내가 알려줘 몇 번 가본 칼국숫집, 혼자 또는 2-3명이
갈 수 있는 가격 저렴(3,000원) 한 것과는 전혀 별개로
옛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알았습니다.
춘천 "풍물 옹심이 칼국수" 생각도 납니다.^^ㅎ

https://blog.naver.com/rang5441/2212655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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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에이포님도 음청 국수를 좋아하시는 구려.....
소생도 한 때는 술먹은 다음 날은 제국수를 해 달라고 했지요.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작심한지 5일 만에 무너져....
사모님이 테스트 제대로 하셨네......
요렇게 의지가 약한 남푠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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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ㅎㅎ
저만 아니고 다들 밀가루음식을 좋아하십니다.
국시계라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장칼국시는 이 겨울 별미입니다.
춘천 오시면 메밀칼국시를 곁드린 꿩만두를 꼭 대접하고싶습니다. 
점차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