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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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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추억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동산수풀은 없어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메기의 추억이란 노래는 지난날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일깨워 주었던 노래이다.
과거 이 노래를 듣고 배우고 부르던 시절에는 우리나라 민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 곡은 미국에서 나왔으며 가사는 캐나다의 조지존슨이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한다.
음악의 분위기로 보았을 때 결코 밝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고 인식되었는데 실제 이 가사가 태동되게 된 동기도 가슴 아픈 사랑의 마지막을 애달파하면서 지어졌다고 한다.
인간이 귀를 통해서 듣고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으로 감정을 교환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음악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음악에 원산지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 하여도 느끼는 영역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메기의 추억이라는 노래도 서양에서 들어 왔으니 서양식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배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혹자는 ‘메기’라는 단어가 나옴으로서 그것이 담수어의 한 종류인 메기라는 민물고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낚시와 관련되었거나 낚시를 하면서 연애를 하는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는데서 어류인 메기는 아닌 것 같이 생각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메기를 잡으면서 연애를 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으나 그것은 너무 피상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노래가 태동된 것은 이 가사를 쓴 조지존슨과 그의 사랑하는 애인이자 부인이었던 메기클라라와의 결혼 생활과정에서 채 1년도 안되어 메기부인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면서부터 출발하였다고 한다.
사랑의 순간을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한 애타는 심정을 시로 엮어 낸 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메기의 추억으로 탄생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였다고 하는데 가사는 원작과는 조금 동떨어지게 개작되었으나 그 뉘앙스는 어느 정도 살아있는 듯 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새로운 가사로 단장되면서 뉘앙스를 원작에 비슷하게 붙이려고 애쓴 흔적이 역역히 보인다.
물론 원작과 같이 번안하여 부르면 더 좋았을는지 모르지만 처음 도입한 사람은 그래도 우리나라 정서에 맞추어 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려주고자 원작보다 더 리얼하게 연가 식으로 작사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원작은 아무래도 캐나다 출신의 사고방식에서 지어졌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사뭇 다를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 입맛에 맞게끔 만든 것이 우리가 즐겨 부르는 메기의 추억에 현 가사인 것이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이 장면은 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의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연인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인식했을 것이다.
연애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다르게 발전되었으리라 본다.
남녀칠세부동석을 외치던 조선시대에도 연애는 이루어졌고, 전쟁 통에 정신이 없었던 6.25때도 연애는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의 출발점을 보면 연애가 어디에서 시작된 지를 명확하게 암시해 주고 있다.
금잔디 동산을 연애의 주 무대로 떠 올리면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려고 한 부분이 보인다.
그냥 잔디밭이 아니라 금잔디인 것이다.
실제 잔디나 금잔디나 다른 것은 크게 없다.
이해가 잘 안 간다면 옛날에 즐겨 사용했던 연애 터인 보리밭을 연상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다 같은 잔디지만 앞에 ‘금’이 붙었다는 것에서 격을 달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옛날’을 맨 앞에 세웠다는 것은 추억을 좀 더 깊게 하기 위한 접두어인지도 모른다.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물레방아 소리가 무엇을 뜻하겠는가?
예전에 연애를 하던 장소로서 물레방아가 흔히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에도 결정적인 무대 중 하나가 물레방앗간이다.
지금도 그 물레방앗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 물레방앗간에서 어떻게 연애가 이루어졌는지 자못 궁금하기까지 하다.
어찌하였던 물레방앗간은 옛 사람들이 연애를 하기 적합한 상징적인 장소였음은 분명한 것 같다.
거기에 희미한 옛 생각은 또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떠난 님과 함께 옛 연애 시절이 점점 멀어진다는 뜻이 아닐는지?
“동산수풀은 없어지고 장미화는 피어만발 하였다.”
동산수풀이 없어지고 장미화가 피어만발 하였다는 것은 연애의 절정기를 표현하기 위하여 에둘러 표현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연애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장미화가 피었다는 것은 연애의 감정이 최고조로 올랐다는 암시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물레방사 소리가 그쳤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연애의 과정이 단절되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메기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또 나타내고 있다.
애인이었던 메기가 질병으로 인하여 자신의 곁을 떠난 후 감정을 그대로 나타냈다고 본다.
애틋했던 사랑의 과정을 우리나라 버전으로 승화시킨 가사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된다.
메기의 추억이라는 연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에 있는 연민이라는 감정을 끄집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런 감정이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메기의 추억을 들어 보고 입으로 흥얼거려 보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메기의 추억을 읊조리면서 사라져가는 사랑의 감정을 끄집어 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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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석연2님의 댓글
김석연2 작성일
학생시절에 많이 불렀던 노래.
지금도 아련히 떠 오릅니다.
부르면서 내가 그 감흥에 취해 있던일.
노래가사의 사연은 그 노래를 부르던 시절로 부터 40년이나 지나서야 알았고
메기와 존슨과의 사랑이 못내 아쉬웠었던 기억이 남니다.
그때의 감정으로 이입시켜준 글, 잘 읽었습니다.
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감사합니다.
선배님.
과거에는 잘 먹지도 잘 입지도 못하던 시절었습니다.
보리밥만 먹을 정도가 되어도 감지덕지 하던 시절이었고 떨어지지 않은 고무신만 끌고 다녀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름기라 자르르 흐르는 음식을 먹어도 감동이 별로 와 닿지 않은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궁핍했던 시절에 오히려 감정의 영역은 더 풍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메기의 추억의 어원이 그리 슬프고 가슴아팠다는 것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연없이 만들어진 문화 상징물은 없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찬 인생이 엮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