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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03 – ‘石器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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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은 됐을까? 세상에 태어나 저의 첫 기억은 햇살 눈부신 어느 초가을 한나절, 아버지가 마당에서 누렇게 잘 익은 벼로 알곡을 만드는 모습이다.
나무로 된 지게 같이 생긴 키 낮은 삼발이인 ‘개상’ 위에 놓인 둥굴넙적하게 잘 생긴 돌 기구, 웬만큼 성장해서야 그것을 뭉뚱그려 ‘탯돌’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짚으로 이은 멍석을 마당에 깔고 개상 위에 탯돌을 놓고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태를 쳐 서 알곡을 거두는 모습이 제 인생 최초의 기억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알곡은 절구통에 들어가 햅쌀로 만들어졌고, 그것은 다시 디딜방아를 통해 눈같이 하얀 가루가 되어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추석송편으로 빚어져 차례 상에 올라 조상께 바쳐졌다.
물론 낫과 삽, 괭이를 비롯하여 철기를 사용한 농경문화가 함께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당시 추수하는 모습은 교과서에서 보던 먼 옛날 석기시대 우리조상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 후에 톱니를 이용하여 벼를 훑는 홀태가 나오고, 동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발로 밟으면 원심력이 작용해 와롱 와롱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고 해서 이른바 와롱기계라고 이름이 붙여진 탈곡기가 등장했는데, 이 탈곡기의 등장은 우리나라 농경사회에 혁명이라고 불릴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가족들이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천수답일지언정 둑을 쌓아 논을 만들고, 동네장정들이 품앗이로 갈잎을 꺾어 비료를 대신했는가 하면, 소를 이용하여 가래질한 논에 모를 내어 벼를 심어 가꾼 다음 지게로 수확된 농작물을 이동시켜 도리깨질로 알곡을 만들었다. 무명옷을 입고 대바구니와 옹기그릇에 옥수수와 감자를 담아먹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바로 5,60여 년 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5,60대 이후의 세대들 마져도 석기시대 말末에 태어난 ‘石器人’들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반도에 보따리를 풀어놓고 문명과 담을 쌓고 살았던 인류의 한 종은 어느 한 시기 진부한 삶을 개선하려고 부단히도 투쟁했던 선조들의 성취 덕으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스마트폰을 당연한 듯 들고 세계를 누비며 신유목민의 세상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말도 안 돼! 우리가 석기시대에 태어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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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그러네요, 개구리 올챙이적 모르듯이
우리 또한 신석기시대에 살았음을 잊고 있었네요.
가장 최근까지 쓴 석기는 맷돌이고요.
맷돌로 콩 갈아 순두부 만들어 먹던 때가
엊그제같은데..ㅎ
김남철님의 댓글
김남철 작성일
하아 !
탯돌, 디딜방아, 절구통, 홀태, 와롱 탈곡기, 갈잎 퇴비, 가래질, 도리깨질....
A4님께서 최근 60년의 우리 농촌 모습을 잊혀진 단어를 살려 리얼하게 재현하셨네요.
한참 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에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김선생.
그잖아 보광리 한번 가보고 싶구만.
추석 전후해서 차한잔 마시러 가려고하네.
세양님의 댓글
세양 작성일
崔燉烈님께서 우리와 같은 세대라서 우리나라 농사의 모습이 변하는 과정을
사실 그대로 나열하였군요. 어찌보면 우리 세대는 매우 원시적인 시대에 태어나서
많은 변화를 보면서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네요. 石器시대부터 電子시대까지 . . .